-
-
악의 교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 이토 히데아키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3년 11월
평점 :
원제 - 悪の教典, 2012
감독 - 미이케 다카시
출연 - 이토 히데아키, 니카이도 후미, 소메타니 쇼타, 하야시 켄토
기시 유스케에 미이케 다카시라니! 이 미친 조합은 뭐란 말인가! 당연히 봐야 하는 영화였다. 미이케 다카시라면 기시 유스케가 그려낸 음울하고 비정상적인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두툼한 두 권 분량의 소설을 두 시간에 담아내긴 무리였을까? 한꺼번에 등장인물이 쏟아져 나오는 초반은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고등학교 교사인 하스미는 다른 교사들에게서도 학생들에게서도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다른 교사들이 하기 꺼려하는 궂은일도 마다않고, 학생들의 상담도 잘 들어주고 해결도 해준다. 그래서 학생들이 '하스미!'라고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에게도 비밀은 있었으니, 바로 여학생과 관계를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과 감정적인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이지메라든지 집단 컨닝, 교사의 학생 희롱, 가정 폭력 등을 보여주면서 다른 학생과 교사들의 사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는 아니고, 짧은 장면 전환으로 대충 그런 분위기라고 추측할 수만 있었다. 거기다 하스미의 과거가 잠깐씩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하스미의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를 오간다. 그래서 몰입이 힘들었나보다. 하지만 초반에 그냥 지나가는 장면도 꼼꼼히 봐야한다. 나중에 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하스미의 살인극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불량아를 처리한다. 느릿하니 이제 연주가 시작된다고 알리는 것 같다. Adagio,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
뒤이어 그는 아주 대범하게 그를 의심하는 다른 교사를 죽인다. 이때는 조금 속도를 내었다. 정확하고 빠르게 그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Moderato, 보통 빠르게
이제 그의 살인에는 가속이 붙었다. 살해한 교사와 함께 자신을 의심하던 학생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축제 준비를 하려고 학교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까지 그의 희생양이 된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고, 시체를 숨기려면 전장에 숨기라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Allegro, 빠르게
이후 영화는 아이들을 웃으면서 죽이는 하스미와 그의 행동에 놀라움과 배신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반항하는 아이들의 대결로 이어진다. 거기에 하스미는 미리 범인으로 몰아세울 다른 교사에 대한 증거조작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고, 냉정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마치 클라이맥스를 향해 모든 악기가 총동원되어 빠르고 힘차게 연주하는 음악처럼, 그의 행동에는 후회도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었다. ‘역시 미이케 다카시!’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Presto, 매우 빠르게 또는 Prestissimo
그에게 어쩌면 눈앞의 아이들은 자기가 가르치던 제자가 아니라, 사냥할 토끼나 여우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자기는 여학생과 관계 맺는 것이 당연하고, 다른 교사가 그러면 약점으로 이용해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보다.
급박하게 흐르던 음악이 절정에서 끊어진다. 마치 줄에 몸을 묶고 높이 올라갔다가 툭하고 추락하는 것처럼. 그게 하야미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체육 교사 얼굴이 낯이 익다했더니만, 일본 드라마 ‘용사 요시히코’ 시리즈와 ‘백야행’에서 찌질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으로 나왔던 배우였다. 여기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나온다. 그리고 하스미가 매번 흥얼거리는 노래,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제 어디 가서 이 노래 좋다고 추천하지 못하겠다. 사이코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반박 들어올까 봐.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 애인님이 기시 유스케 작품을 모으고 있는데, 빌려서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내가 가져야……그러면 설마 마구 화를 내면서 ‘실망이야’라면서 ‘우리 그만 헤어져’ 이러는 건 아니겠지?
* 하스미가 흥얼거리는 노래 제목이 ' Mack The Knife 칼잡이
맥'이라는 뜻이다. 그걸 응용해서 리뷰 제목을 만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