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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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저자 - 천종호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물론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멀쩡히 자기가 하는 일이 범죄라는 걸 알고 저지르는 사람을 왜 용서해야 하지? 자기가 한 일에 어떤 결과가 뒤따를 지 뻔히 알고 했다는 건, 그 뒤에 오는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거잖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하지만 예외는 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그 예다. 막말로 부모가 집에서 가르친 게 때리고 욕하고 훔치는 것이라면, 그 애들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짓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 잘 모르기에, 자기가 하는 일이 범죄라는 것을 모르기에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모 방송국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문제가 있다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열이면 열 다 부모가 문제가 있는 경우였다. 부모가 애를 그따위로 길러놓고는, 아이 탓을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애한테 대놓고 욕을 하고 무시하고 폭력을 보여주고는, 애가 욕을 하고 폭력적이라고 고민이라고 한다.


  뭐가 정의고 뭐가 불의인지 가르쳐야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가정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가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바로 집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성을 기르고, 기본 예의를 가르치고, 올바른 선과 악의 구별을 익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집이다.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부모이다.


  하지만 가정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가해자들, 특히 학교 폭력에 가담한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들이 하는 일이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일이 허다했다. 왜 그것이 나쁜 일인지,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부모 역시 비슷한 시선이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왜 남의 집 아이 앞길을 망치려 하냐는 식이었다. 자기 아이가 처벌을 받을 것 같으니 달려가서 피해자를 협박도 하고 빌기도 하다가, 선처를 베푸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부모들의 얘기가 책에 있었다. 읽으면서 완전 어이없었다. ‘뭐 이런 싸가지 없는!’이라는 말과 함께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학교는 자기들의 체면 유지와 교장이나 교감, 교사들의 평가를 위해 쉬쉬하고, 부모는 자기 자식만 잘 되면 장땡이라는 주의인 세상에서 과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 수 있을까? 가해자는 떳떳하게 학교를 다니고, 피해자는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해야 하는 이 불편한 현실에서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당한 놈이 멍청한 거다? 당하는 애는 다 그런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누군가 그들보다 힘이 센 사람이 나타나서 괴롭히면, 뭐라고 할 것인가? 내가 멍청하고 이유가 있어서 당하는 거라고 포기하고 말 텐가?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지독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학교에 득실댄다는 것이다.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부모들은 말하는데, 자기 아이가 바로 그 잘못 사귄 나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이러니 학교 폭력으로 처벌받는 아이 카카오 스토리에다가 ‘남자라면 교도소 한 번 다녀올 수 있는 거지.’라는 격려 댓글을 다는 아이들이 나오는 거다.


  문제는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정도 문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집에서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한다거나 도둑질을 해야 한다.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가정이 앞장서서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다. 대개 가정은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야하는데 말이다.


  소가 낳은 것은 소 새끼이고, 개가 낳은 것은 개 새끼라고 한다. 그리고 개나 소는 끼리끼리 뭉치면서 살아가고, 소나 개가 갖춰야할 덕목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세대를 내려가며 학습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사회에는 겉은 인간인데 속은 개만도 못한 것이 들어찬 존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인간으로 배워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서, 인간도 못한 것이 몸을 강탈한 모양이다. 영화 ‘신체 강탈자’처럼 말이다.


  이건 어른들이 후대에 사죄해야 할 일이다. 지금 잘못 가르친 행동 하나가, 알려주지 않은 사회성과 예의범절 하나가 후대에까지 이어지면서 앞으로의 사회를 더욱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미래를 다룬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무법천지의 미래 사회는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야 늙어서 죽으면 끝이지만, 후손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책에서 보면 어떤 아이들은 과거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면 그건 그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 된다.


  그들을 범죄의 길로 내몬 것이 어른들이라면, 역시 올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상황을 똑바로 인정하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머리를 모아야 한다. 무조건 남의 탓만 해서는 절대로 아이들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


  내 아이는 문제가 없다고, 내 아이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일이 아니다. 폭력이라는 건, 이미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로 부모들도 정기적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 부모가 문제 아이를 만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런 교육을 누가 담당해야 할 지…….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 중에 모범이 될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라면이 너무 짜다고 비행기 승무원을 폭행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이 나라는 참 골고루 문제가 많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나처럼 구석에서 해결책은 내놓지도 않고 무조건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고. 반성한다. 혹시 조카들에게 나도 모르게 폭력적인 태도라든지 욕설을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직업상 만나는 아이들에게 불의와 정의를 제대로 구별해줬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5천만 국민들이 나부터, 나 하나라도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생각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막내 조카를 만나면 사랑한다고 꼭 안아줘야겠다.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고 고모가 안아주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런 거는 고모의 위엄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의 범죄를 다 용서해주자는 건 아니다. 상습적이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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