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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떠난 자리
김만권 지음 / 그린비 / 2013년 2월
평점 :
저자 - 김만권
이 책은 특이하게 에필로그로 시작해서 프롤로그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읽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새로운 시민
사회로 발을 내딛길 기대하며, 프롤로그로 마무리를 한 것 같다.
1부에서는 지난 대선 이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잃어버린 다섯 가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상실, 자유주의의 상실,
진보의 상실, 소통의 상실 그리고 유토피아의 상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인데 그것을 상실했다니, 다소 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대의 민주제로 인해 참여 민주주의가 훼손되었고, 구경꾼들의
민주주의내지는 도망자 민주주의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진보의 용어가 혼동이 되면서,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고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남북한의 대치라는 특수 상황에 대해 약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세대 간, 계층 간, 신념 간의 갈등으로 인해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유토피아의 상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2부는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개를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저자는 시민의 참여와 활동을 중요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수 의견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를 호모포비아적이라 규정하고, 그에 반하여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중시하는 시민 게릴라적인 활동을 높이
사고 있다. 그는 이것을 헤테로토피아적이라고 지칭한다. 그 일례로 작년에 돌풍을 일으킨 ‘나는 꼼수다’와 ‘희망버스’를
든다.
책은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이유와 예를 들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읽기는 힘들었다. 이건 아마 내 독서 습관
때문일 것이다. 단문 위주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문장이 몇 줄씩 이어지며 긴 호흡이 필요한 이 책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빙 돌려 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건 통합진보당 사건을 언급한 ‘진보의 상실’ 부분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저자는 거기서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을 밝혔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신문을 읽어도 다 나오는 이름들이니까.
그렇지만 ‘자유주의의 상실’이나 ‘민주주의 상실’ 같은 부분에서는 모호하게 ‘~세력’ 내지는 ‘~집단’이라고 대상을 언급했던 것에 비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이름들은 신문에 실명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걸까? 왜 진보 계열 인사들의 이름만 실명으로 콕 집어 언급했는지 잘 모르겠다.
만만하기 때문일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그건 꼭꼭 숨긴 채 고상하고 평이하게 포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리뷰를 쓰는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직설적이고 비속어나 난무했지만, 퇴고를 하면서 용어를 엄청
순화시켰다.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화가 났다. ‘왜 또 시민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려는 거지?’라는 위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역사를 보면, 정치가들이 병신 짓을 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을 시민들이 피흘려가면서 바로잡아놓았고, 그러면 정치가들이
자기들이 마무리를 하겠다고 하면서 삽질과 병신 짓을 했고, 다시 국민들이 몸 바쳐 제자리로 돌려놓기의 반복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때도
양반들은 도망갔지만 평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싸웠고, 일본 침략기에도 그랬으며, 4.19때도 그랬고, 6월 민주 항쟁 때도 똑같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역시 깨어있는 시민의식 어쩌고 하면서 급기야 시민 게릴라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대안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이유가, 시민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깨어있지 않았으며 참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걸까? 병신삽질만 해대는 정치가들을 몰아내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제라도 만들라는 걸까? 아니면 기존의 정치가들을 다
낙선시키고 시민들이 입후보해서 새로운 판을 짜라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또다시 시민이 나서서 판을 뒤엎고 자기들에게 넘겨달라는
걸까?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방관자로 남게 된 이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했더니 자기들 배만 불리기 바쁜 새누리당, 자기들
살겠다고 자기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죽으라고 등떠민 민주당, 그리고 채 영글기도 전에 못된 것만 배워갖고 김칫국물 마신
진보당이 자폭하는 동안 시민들은 먹고 사는 일에 열중해야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제대로 하라고, 경제를 살리라고 했더니 자기네 통장 잔고만 늘린
자들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다른 곳엔 눈 돌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시 그런 시민들에게 피 흘리기를 요구하는 건가? 왜 이 나라는 언제나 시민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가? 왜 정치를 하거나 정치에 한
발을 담근 사람들은 자기들이 활동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이 갖다 바치길 바라는 걸까?
물론 깊이 생각하고 공부하는 시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색하고 관찰하고 반성해야한다. 하지만 그걸 이용할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