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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폭력 비판 -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주디스 버틀러 지음, 양효실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부제 -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원서 - Giving an Account of Oneself: A Critique of Ethical Violence (2005년)
저자 - 주디스 버틀러
결론을 얘기하자면, 이 책은 어려웠다. 나 같은 초보자가 호기심에 덤빌 책이 아니었다. 예전에 읽었던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같이 약간은 말랑말랑한 내용일 것이라 추측한 것이 오산이었다.
저자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하는지 현대 철학자들의 예를 들면서 얘기하고 있다. 제일 많이 언급된 것은 푸코, 아도르노 그리고 레비나스이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철학가는 20세기 초반까지가 다였기에, 그 이후에 나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본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여 그들이 주장한 내용이 인용되면서, 거기에 근거한 저자의 주장이 펼쳐지는 내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책을 읽다가 컴퓨터를 켜서 검색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나’라는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처음 시작하는 철학’에서 익혔기에, 그 부분은 어느 정도 따라가나 싶었다. 나와 남을 구별해야,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확실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나라는 개념의 정의를 어디까지 봐야하는지 문제가 생긴다. 저자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부분은 공감했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선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범위가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선을 이해하지 못해 서로 오해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공감한다고 해서, 독서의 길이 쉬운 건 아니었다. 저자의 얘기하는 속도는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고, 다루는 내용은 너무 광범위했다. 마치 ‘니가?’라고 저자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엉엉엉, 너무해요.
‘1장 자기자신에 대한 설명’ 초반에 약간 헤매다가 겨우 끈을 잡고‘ 2장 윤리적 폭력에 대항해서’로 넘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맥락을 놓쳤다. 저자는 2장에서 ‘나’는 ‘너’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고, 타자와의 관계 밖에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일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건 즉, 나와 너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인지, 소위 말하는 ‘우리가 남인가?’라는 의미로 봐도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남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하면 그것은 곧 나 자신에게도 폭력적인 짓을 한다는 말인지 혼란이 왔다.
그 덕분에 ‘3장 책임감’ 부분은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문단별로는 ‘아, 그렇구나. 이 말 멋지네.’하고 넘어가겠는데, 전반적으로 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책을 다 읽고, 문득 내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집 ‘화요일 클럽의 살인’에 나오는 제인 헬리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거기서 그녀는 이해력이 딸리는 여배우로 나오는데, 사건 해결 이야기를 다 듣고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멍청하다고 그녀를 비웃었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되니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파악해야 하고, 너 없는 나는 의미가 없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게 책임감과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한동안 고민할 거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