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결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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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Secret Adversary, 1922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원래는 27권인 ‘부메랑 살인사건 Why Didn't They Ask Evans?, 1934’을 읽을 차례였다. 그런데 그만 착각을 해서, 이 책을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계획표대로라면 다음 달에 읽어야 하지만, 조금 일찍 읽게 되었다.


  1922년에 출판된, 크리스티의 첫 번째 소설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후 2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이다.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끝나고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던 시점이 배경이다.


  토미와 터펜스는 전쟁 때 군인과 간호사로 만났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뭔가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청년 모험가 회사’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 그들에게 첫 일이 들어왔는데, 수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은 즉시 일을 의뢰했던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는데,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적인 음모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15년 전쟁이 한창 중일 때, 극비 문서를 갖고 있던 첩보원이 탄 배가 침몰한다. 시간이 없었던 첩보원은 마침 구명선에 타는 젊은 미국 여성에게 문서를 맡겼는데, 그녀가 사라진다. 문서와 함께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문서를 찾아서 영국 정부를 협박하려는 조직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토미와 터펜스는 사자 굴로 뛰어든다.


  ‘CSI’라든지 ‘크리미날 마인드’ 같은 최첨단 기기로 수사하는 드라마나 ‘본 시리즈’나 ‘007 시리즈’같은 영화를 보다가 이 책을 읽었더니, 어딘지 모르게 김이 빠진 느낌이 든다. ‘아니, 잠깐만 여기서 그럴게 아니라 전화를 해보거나 검색을 해보……. 아, 아니구나. 그런 기술이 아직 없지’ 이런 식이다. 지문이라도 조사해야하는 게 아닐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아직 데이터베이스 같은 건 없겠구나.’라고 아쉬워했다. 지문을 이용한 수사 기법이 그 당시 이미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요즘 같은 검색기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을 읽을 때는, 그들이 증거와 심리적인 부분을 위주로 수사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 편은 추리도 추리지만 대부분이 몸으로 부딪히면서 수사하는 내용이라 자꾸 현대물과 비교하게 된다.


  그런데 그건 독서의 기본이 아닌 것 같다. 소설이란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읽는 사람의 시대와 비교해서 과학 기기가 빈약하다고 투덜거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범인을 잡아가는 묘미를 깨우쳐야한다고 본다. 그게 또 재미니까.


  어쩌면 내가 토미와 터펜스 커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커플이라서 싫은 건가……. 아니면 겨우 한 권을 읽었기에 아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지르고 보는 터펜스와 신중한 토미,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이 나름 글에 활력을 불어넣긴 했다. 거기다 똘똘한 엘리베이터 보이 앨버트까지 등장하여, 가벼우면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 아, 무작정 뛰어들고 보는 터펜스의 추진력이란 진짜 놀라웠다. ‘아가씨, 그러다 다칩니다.’라고 중얼거리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는지 모르겠다.


  사라진 여인의 사촌이라는 줄리어스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얼굴만 밝히는 성격 같았다. 만약에 그녀가 안 예뻤으면, 과연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서 찾으려고 했을까? 죽을 위험을 넘기면서? 그 놈의 외모 지상주의, 쳇. 거의 백 년 전부터 존재한 뿌리 깊은 사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이 책은 첫 장부터 신선하게 충격을 줬다. ‘불과 열여덟 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젊은 여인이었다.’ 헐, 요즘은 열여덟 살이면 학생 내지는 소녀라고 부르지 않나? 여인이라니! 어딘지 모르게 원숙미가 철철 넘치는 30대 여성이 떠오른다.


  두 번째 충격은 288쪽에서였다. ‘그는 제 또래의 미국 소녀들은 영국 소녀들보다 정신연령이 높다는 것을, 그리고 과학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훨씬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세상에나, 크리스티 여사가 자국의 소녀들을 대놓고 디스하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이 나오는 책이 또 있다고 하니, 천천히 기다려봐야겠다. 그 때는 부부가 된 두 사람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기대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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