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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 사월의책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Cogitamus
부제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저자 - 브뤼노 라투르
저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유명한 석학이고 ‘21세기의 헤겔’이라고 불린다는데, 고백하자면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나중에 내 후손들은 이 사람의 이론을 외우느라 윤리나 도덕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 이해를 못하겠어!’하고 절규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칸트나 플라톤의 이론을 외우느라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생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가 한 대학생에게 보내는 총 여섯 개의 편지로
이루어져있다.
첫 번째 편지 -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두 번째 편지 - 과학기술의
미궁 속으로
세 번째 편지 - 이것은 왜
과학이 아니란 말인가
네 번째 편지 - 과학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기
다섯 번째 편지 - 무엇을 할
것인가?
여섯 번째 편지 - 과학인문학이
그리는 하이브리드 세계
교수님이 보내는 편지라니!
그것도 시사문제에 대해 자신의 이론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편지라니, 받는 학생의 기분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수님에게서 받은 편지라고는
성적표밖에 없었기에, 속으로 매우 두근거렸을 것 같다. 어쩌면 죽 나열된 용어와 설명 때문에 교수님 너무하다고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일인 지도를 받는다고 감격했을지도. 그래도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신문 기사 스크랩도 열심히 하는 걸 보니, 꽤나 열성적인 학생인
것 같다.
저자의 책, 아니 여섯 통의
편지를 다 읽으니 ‘그러니까 이 사람은 문과와 이과가 서로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상호보완을 하면서 지구촌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처음 느낀 것은 첫
번째 편지에서였다. 저자는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과는 거리가 먼 왕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서, 로마의 공격을
물리치는 위업을 이뤘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에서 나온 개코 원숭이 얘기에서 확신했다. 저자는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과학 기술 없는 인문학은
원숭이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조금 놀라웠다.
그렇구나, 그래서 도구를 다루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온 거구나. 다른 동물도 도구를 다루지만, 그것을 발전시켜 문명을 이룬 건 인간뿐이니 과학
기술은 인간의 생활에서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거였구나.
그러다가 의문이 생겼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그 사실은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히 과학과 인문이 같이 발전을 해야 하는 거잖아. 그 둘의 관계는 2인 3각 같은 거잖아.
한쪽이 너무 앞서면 넘어지는 건 당연한데?
어쩌면 그런 사실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 저자가 강조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서 또 얘기하는 걸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한다.’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원제를 ‘Cogitamus ergo
sumus'에서 따온 것이리라.
그나저나 대중 교양서라고
하는데, 어느 대중을 위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집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몰라서 덮어뒀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진도가 나갔지만,
역시 중간까지 읽고 살포시 책장에 꽂아뒀다. 세 번째가 되어야 겨우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저자의 용어 해석이라든지 용어
선택이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름대로 쉽게 풀이하고 간단한 어휘를 선택한 것 같기는 한데, 남이 만든 그만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 100%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내 머리에 좀 더 많은 지식을 저장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한 다음,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