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악마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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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vil Under the Sun, 1941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출판사는 이런 걸 노린 모양이다. 13권 ‘커튼’에서 포와로 소설 이제 안 나온다고 해놓고, 14권 ‘백주의 악마’에서 ‘짜잔 써프라이즈~ 나 아직 활동하고 있어요.’하고 그가 다시 나오다니! 너무도 반가워서 두 손으로 책을 공손히 잡고 읽어 내려갔다. 예의를 갖춰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커튼’을 읽었을 때의 아쉬움이나 우울, 슬픔 따위는 팔랑팔랑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이다. 음, 그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내 기억력이 나쁜 걸지도.


  읽다보면, ‘엘리자베스 공주’라는 표현이 나온다. 상당히 낯설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가? 책이 나온 연도를 보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1941년. 그녀가 여왕에 즉위한 것은 1952년이니, 아직도 멀었다. 문득 1950년대에 나온 책을 빨리 읽고 싶어졌다. 51년도에는 공주였다가 52년도엔 여왕으로 나올 거 같았다.


  그나저나 여기서도 포와로는 늙었다고 무시당한다. 어쩌면 노망이 들었을 거라고 관련자들이 말할 정도이다. “그 사람은 무척 늙었더군요. 아마 노망이 들었는지도 모르죠.” - p.173 도대체 그의 나이가 몇인지 너무 궁금하다. 이 책에서의 시간대로 보면 그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데, 노망 얘기가 나올 정도라니……. 뭐, 책 속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니까.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주인공들도 방영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비슷한 예로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도 있고. 혹시 그 시대에는 50살만 넘어가면 노인네 취급을 받았던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퍼진다. 내 포와로 할아버지 아니다!


  유명한 휴양지, 한 여인이 나타난다.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남자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아레나 마셜.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사춘기 소녀는 새엄마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남자. 그의 부인은 그런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두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비난도 하며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레나 마셜이 살해당한다. 마침 휴가를 보내던 포와로는 한숨을 내쉬며 사건에 뛰어든다. 태양 아래 모든 곳에 범죄가 있다는 말처럼, 그가 마음 편하게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초반에 나온,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시체실 같다는 표현이 참으로 오싹했다. 하긴 그 당시는 수영복이 지금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모양도 비슷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일광욕을 하느라 엎드려있으니 누가 누군지 식별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시체실이라니…….


  하지만 어쩌면 그게 인간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피부 한 꺼풀 벗기면 인간은 다 똑같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 외모, 엄밀히 말하면 피부 가죽에 현혹된다. 그것을 통렬히 비판한 대목이 있다.


  “그녀는 아레나 마셜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두뇌입니다.” -p.93


  저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난 우스갯소리가 있다. 외모와 내면을 두고 본다면, 외모는 예선이고 내면이 본선이라고, 그러니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본선은 밟아보지도 못한다는…….


  범죄자는 냉혈한처럼 자기 자신 이외의 사람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 여차하면 누명을 씌울 사람을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까지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범죄는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난다. 증거인멸도 확실하고, 알리바이도 완벽하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무심코 지나칠 단 하나의 실수라도 포와로는 놓치는 법이 없다. 누가 던졌는지도 모르는 작은 병 하나가 그렇게 큰 힌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긴, 그건 포와로니까 가능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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