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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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Curtain, 1975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을 읽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다.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가 1976년 사망했으니, 이 책은 그녀가 죽기 일 년 전에 나온 것이다. 또한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포와로가 나오는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아, 갑자기 배경으로 틀어놓은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울컥해졌다. 어떻게 내가 포와로를 떠나보낼 수가 있을 지……. 그래서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총 80권짜리 시리즈 13번째에 그의 마지막 출연작을 넣을 수 있는지, 출판사를 원망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다음 책을 읽을 때는,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거잖아? 오, 출판사에서 이것을 노린 것일까? 포와로가 나온 마지막 소설이긴 하지만, 아직 이 시리즈는 남아 있습니다! 이런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부인도 죽고 자식들도 장성해서 다들 떠나간 뒤, 홀로 살아가는 헤이스팅즈에게 포와로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스타일즈 저택’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호텔로 변한 그곳에서 헤이스팅즈는 추억에 잠기기도 전에,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그곳에 연쇄 살인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으며, 포와로는 그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딸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헤이스팅즈는 긴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도 헛되게,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데…….


  언제나 동시대를 반영하는 크리스티 여사답게 안락사라든지 의학 연구같이 민감한 주제도 가볍게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직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어느 쪽 편을 들지는 않는다. 양쪽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제는 늙어버린 포와로와 헤이스팅즈의 자조적인 표현에 눈물짓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벌써 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었다니…….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자 크리스티의 첫 번째 작품의 배경이었던 스타일즈 저택. 물론 실제 연도 상으로는 두 작품의 시간은 거의 55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1920년도에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 정도의 긴 시간은 아니었다. 명확히는 나오지 않았지만 30년은 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동안 많이 바뀌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그는 휠체어에 몸을 간신히 의지하고 있었다. 한때 뚱뚱했던 몸집은 홀쭉해져서, 이제는 마르고 조그만 남자가 되어 버렸다. -p.18’ 이건 헤이스팅즈가 묘사한 포와로의 모습이다. 아, 진짜 초반부터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포와로가!


  헤이즈팅즈는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언제나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부인이 죽은 후 더욱 더 우유부단해진 것 같다. 더 소심해지고 고집이 세지고. 순진한건 여전하고 말이다.


  포와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답게 범인은 그야말로 치밀하고 심리전에 능한 사람이 나온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만 옆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살인마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자이다.


  이런 사람이 무섭다. 욱하고 열 받아서 난리를 치는 사람이면 피한다거나 맞받아치면서 육탄전을 벌이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 외모를 하고 옆에서 쏙살거리면서 남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은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포와로가 나선 것이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눈물이 나왔다. 어떻게 이런 결말을……. 크리스티 여사, 나쁜 사람! 나쁜 사람! 어떻게 이런 결말을! 다른 작가들처럼 그냥 내버려뒀으면, 어느 곳에선가 포와로가 콧수염을 비비면서 잘난 척하고 있을 거라는 위안이라도 얻잖아! 이 나쁜 사람! 이미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하아, 나의 포와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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