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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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ABC Murders (1936년)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읽으면서 ‘이거 참, 진짜 벌어지면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A로 시작하는 마을에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해당하고, B로 시작하는 마을에서 B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해당한다. 그래서 제목도 ‘ABC 살인사건’이다.


  그걸 우리나라로 따지면 김해나 김포에서 김 씨나 강 씨인 사람이 죽고, 진해에서는 진 씨나 정 씨인 사람이 살해당하고……. 이건 뭐 무작위 살인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특이한 성을 가진 사람만 빼고, 거의 오천만 전 국민이 벌벌 떨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통신 기술이 너무도 발달하여, 그런 사건이 있다면 금방 전국으로 퍼져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흔한 성을 가진 사람들은 불안에 떨 것이고……. 음, 그렇다면 저런 살인범이 1936년, 2차 대전 전에 활동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비록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진짜로 일어나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작품으로 돌아와서, 포와로에게 편지 한 장이 도착한다. 다분히 도발적이고 거만함이 철철 느껴지는 도전장이었다. 거기에 적힌 예고대로 살인이 일어나고, 또 다시 2차 범행을 예고하는 편지가 배달된다. 초비상이 걸린 경찰본부와 자존심이 상한 포와로. 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나 연인과 특별 팀을 이루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이라는 말이 정말로 딱 들어맞는 사건이었다. 하나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개의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대담함과 치밀함 그리고 뻔뻔스러움이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도대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무 관련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걸까? 그 머리에 뭐가 들어있기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요즘은 저런 범죄자들이 많다. 단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말이다. 성욕이선 식욕이건 명예욕이건 뭐건 간에, 그것을 위해 상대의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가는 그런 족속들.


  생각해보자, 저 소설이 나온 지 거의 80년이 되어간다. 그러면 그 때부터 저런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존재해왔다는 것인데…….


  범죄는 줄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되레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 특히 나 자신을 위해 남에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이기적인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까? 그동안 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도, 처벌을 받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도 전혀 학습화되지 않았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생각을 할 머리와 뜨거운 붉은 피와 연약한 살을 갖고 있는 생명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책은 바깥의 좋은 날씨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활자에만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몰입감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으아, 뭐 이런 기발한 설정이!’라고 만족스러우면서 놀라움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내용이 충실했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온갖 범죄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울해졌다. 살인이나 강도, 유괴, 납치, 강간 같은 사건들은 소설 속에서만 봤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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