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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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nd Then There Were None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예전에는 포와로를 좋아했었다. 그 다음에는 미스 마플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 두 탐정이 나오지 않는 크리스티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 역시 그 내용과 심지어 결말까지 주변에서 많이 들었는데, 정작 글자로 제대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라? 예전에 아주 어릴 적에 여름에 납량특집으로 해줬던 드라마가 기억났다. 그 당시 마지막에 벌떡 일어나 앉던 아저씨가 무서워서 아빠 뒤에 숨었던 한국 드라마 내용과 흡사했다. 그리고 비슷한 패턴을 가진 다른 많은 작품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일본 애니 ‘괭이 갈매기 울적에’라든지 무한 도전에서 멤버가 금칙어를 말하면 하나씩 사라지던 에피소드, 미국 드라마 ‘히퍼스 아일랜드’ 등등.


  아, 1939년도에 나온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 이렇게 많다니! 고전 명작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내용은 인디언 섬으로 초대받은 여덟 명의 손님이 모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초대한 섬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게다가 그들이 도착한 섬에는 아직 주인이 도착하지도 않았다.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녹음된 레코드에서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드러난다. 손님 여덟 명과 고용인 부부가 과거에 누군가를 죽게 했거나 책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식당에 있던 인형의 사라지면서, 동요에 맞춰서 한 사람씩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니 이 책의 출판년도가 1939년도라니, 지금부터 74년 전에 나왔다니! 트릭이 밝혀질 때 ‘이건 사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예측을 못한 내가 바보였다. 대개 저런 상황에서라면 그 사람과 한 패가 되는 것이 제일 유리하고 그래야만 할 것이니까. 그걸 생각 못하다니! 뻔히 알면서도 틀리는 건 바보나 하는 것이라고 예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에잇, 눈을 뻔히 뜨고 당한 기분이다. 하지만 범인이 누군지만 알고, 조력자는 몰랐던 게 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에 베라가 최후의 선택을 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생각보다 더 치사하고 나쁜 악녀였다면 그 트릭은 성공하지 못했을 텐데, 뭘 믿고 그런 계획을 밀어붙였을까? 아무리 그런 암시와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해도 말이다.


  아, 어쩌면 희생자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세세하게 조사했으니 모든 것을 다 고려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그들을 초대할 때, 친한 친구의 이름을 빌면서 그들의 행동 패턴과 사고 방향을 고려해 불러 모았으니까.


  사람 하나 죽이는 것도 어려운데, 이 책의 범인은 열 명이나 죽이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정체는 드러내지 않고, 하나씩 동요 가사에 맞춰서. 이 얼마나 차분하며 계획적이고 선경지명이 있고 집착력이 쩌는 사람인가! 역시 살인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살인을 보고 예술적이라고 찬양할 생각은 없다. 살인은 살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죽어나가는 열 명의 사람들은, 과거에 각자 누군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다. 법은 그들을 무죄라고 판단했지만, 실상은 유죄였다. 교묘하게 법을 속아 넘긴 것이다.


  그런 자들을 개인적으로 처단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 법의 처벌이 미약하다고 해서, 또는 법이 범죄자들의 어린 나이를 고려해서 최소한의 처벌도 없이 풀어주는 경우가 있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그런 분위기에 따라 피해자의 가족이 그런 자들을 개인적으로 응징하는 내용의 영화나 소설이 나오기도 했다. 독자들은 열광했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작품들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에 그런 소재를 다룬 책이 먼저 나왔는지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렇다. 그런 점에서도 작가의 선견지명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을 앞서가는 여자 같으니라고!


  심리 묘사의 섬세함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상황 묘사를 넣어주고, 인물들의 심리에 비중을 늘렸다면 베라의 결정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트릭에 치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차 타놓은 것을 깜박해서 차갑게 식을 때까지 고개를 못 들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활자에 마약이라도 뿌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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