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Who moved my cheese?

  저자 - 스펜서 존슨

 

 

  예전에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당시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은 시류에 둔감하고 약간은 무식한 자로 매도시켰던 작품이다. 내 안에 있는 반항아 기질 때문인지 일부러 안 읽으려고 버티다가, 왜인지 모르지만 읽게 되었던 책이다. 그 당시 첫 느낌은 ‘바보 아냐? 치즈를 누가 옮겨 옮기긴. 지가 눈치 없이 돼지같이 다 먹었구먼.’이었다. 이후 책의 행방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와 닿는 것이 있었고, 예전에 내가 이 책에 나온 쥐나 인간처럼 행동했었다는 기억이 난 것이다. 내가 이제 나이를 들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반항아 기질이 많이 줄었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런저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창고에 가득히 쌓여있는 치즈. 먹고 또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이 많은 치즈.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쥐 스니프와 스커리는 많은 치즈가 있어도 여전히 신중하고 주의 깊게 치즈를 먹었다. 뭔가 달라진 것은 없는지, 변화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치즈가 다 떨어졌다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대안을 마련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 헴과 허는 그러지 못했다. 안락한 생활에 만족했기에 느슨해지고 안주했었다. 그렇기에 치즈가 없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없다는 상황에 분노하고 좌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섰지만, 헴은 그냥 그 자리에서 좌절하고 머물렀다.

 

  쥐 같은 유형은 눈치 빠르고 변화에 잘 적응한다. 하지만 뭐랄까,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매번 그러면 곤란하지만, 가끔은 풀어지기도 하고 마음 편히 지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인간 허는 적당히 인생을 즐기고 좌절도 겪지만, 바뀐 상황을 인정하고 바꿀 의지와 실천력이 있었다. 그래서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맛보기에 고생하는 보람이 있다.

 

  반면에 또 다른 인간 헴은 오직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에게 발전이란 전혀 관계없는 단어였다. 오직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말이었다. 모든 잘못은 남 탓, 자기는 희생양.

 

  난 어떤 유형일까? 적어도 헴 같은 유형이 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공부하고 채찍질해야겠다. 적어도 그처럼 ‘난 너무 늙었어.’라고 변명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내가 생각해도 난 게으른 유전자가 숨어있는 것 같으니까. 부모님은 안 그러신데, 왜 나한테만 그런 유전자가 들어있는 걸까? 설마 내가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나오는 것처럼 두 분의 열성인자만 물려받은 걸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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