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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むかし僕が死んだ家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뭔가 허전하고 아쉬워서 고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다.
제목부터 뭔가 섬뜩하다. 내가 죽은 집이라니. 그리고 표지 또한 으스스하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 ‘설마 이거 폐가에 머무는 귀신 이야기?’라고 의아해했다. 설마 이 작가가 예전에는 미스터리뿐 아니라 호러물을 썼었나? 전에 읽은 소설 ‘방과 후’는 깔끔한 추리 소설이었는데? 그런 다양한 잡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마지막 장을 다 읽은 다음, 다시 한 번 앞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살폈다. 그러면서 ‘아, 이게 그래서 그런 거구나.’ 내지는 ‘이게 그렇게 해석되는구나!’ 등등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글 전체가 복선이자 암시였다. 이런 대단한 사람 같으니!
물리학 조교수이자 자유 기고가인 나. 어느 날 내 앞에 예전에 사귀었던 사야카가 나타나 도움을 요청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열쇠를 가지고, 나에게 어느 집을 같이 가보자고 한다. 어쩌면 육아 노이로제에 아이를 학대하는 것이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의 일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와 동행한다. 둘은 외딴 곳에 있는 묘한 분위기의 집에서 과거를 캐내는 여행을 시작하는데…….
만 하루 동안 폐쇄된 집에서 두 남녀가 밝혀내는, 20년도 더 된 과거의 비극적인 가족사. 그런데 남녀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해서, 뭔가 19금적인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긴 이 사람의 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책을 보면서 ‘혹시?’했는데 그게 맞았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런 독자를 위해 또 다른 장치를 숨겨놓았다. 설마 했었는데 헐……. 진짜로 그럴 줄이야.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도저히 중간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은 팽팽했고, 강약의 완급 조절 역시 훌륭했다. 적절한 복선과 암시 그리고 그 해결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읽는 내내 추리하고 생각하고 유추하게 만들었다.
다 읽고 나서 가만히 되짚어 보니, 소설 속에는 과거라는 희끄무레하면서 형체 없는 망령이 맴돌고 있었다. 귀신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질퍽거리고 끈적이면서 꽁꽁 사람을 옭아매고 있었다. 귀신은 깜짝 놀라고 제령이나 퇴마를 하면 사라지지만, 기억이라는 건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최면을 걸지 않는 이상 잊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은 나올 확률이 희박하지만 기억은 그게 아니다. 더 나쁜 놈이다, 기억이라는 건.
약간은 씁쓸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자식을 낳기는 했지만,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 아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비극이 생기는 거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든 생각은 딱 한 문장이었다. 제길, 너무 멋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