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 [할인행사]
폴 앤더슨 감독, 미셸 로드리게즈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원제 - Resident Evil

  감독 - 폴 W.S. 앤더슨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에릭 매비우스, 미셸 로드리게즈, 제임스 퓨어포이

 

 

  몇 년 전에, 친구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년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집이 멀었던 몇 명은 자고 가기로 했는데, 밤에 텔레비전을 켜니 아주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가 총질을 하면서 괴물들과 싸우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거의 후반부터 봐서, 제목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비디오 가게로 향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레지던트 이블 앓이’가 시작된 것이. 이후 새로운 편이 개봉할 때마다 앞부분을 복습하는, 이른바 ‘성지 순례’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건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건 ‘쏘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그 영화는 놓아주려고 한다. 권태기인가보다. 물론 이 영화도 슬슬 마음이 뜨고 있다. 뭐든지 박수칠 때 떠나야한다는 말이 맞다보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반복에 슬슬 짜증이 나고 있다. 게다가 너무 시리즈가 길고.

 

  ‘앨리스’는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동화에 나오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아가씨가 되었다. 그녀는 토끼가 아닌 군인들을 따라 지하 동굴로 뛰어든다. 어릴 적에는 호기심이었지만, 이번에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는 긴 금발 머리를 찰랑이며 허리를 질끈 동여맨 원피스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과 샌들을 신은, 로리콤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던 19세기의 앨리스가 아니었다. 21세기의 앨리스는 금발의 단발머리에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양 손에 총을 든 강한 여전사이면서, 동시에 보호해주고 싶은 가냘픈 이중적인 이미지의 여인이 되어버렸다.

 

  이상한 나라에는 이제 모자 장수나 체셔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도 차가운 카드 나라의 여왕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 더 이상 낭만적이면서 동화 같은 곳이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살벌한 전쟁터가 돼버렸다.

 

  무자비하지만 바보 같은 여왕이 다스리던 동화속의 나라는 자본주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다른 인간의 생존권은 지나가던 파리의 충권쯤으로 치부하는, 더 악랄하고 잔인한 기업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변했다. 모자 장수는 기업에 대항하던 남자로, 체셔 고양이는 슈퍼컴퓨터 ‘퀸’으로 대체되었고, 카드 나라 사람들은 좀비들로 바뀌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퀸의 보호 장치에 몸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무사히 살아서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집이 더 좋아, 엄마한테 갈래' 라며 칭얼대는 소녀는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지가 않다. 대신 '과거는 묻지 마세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 라며 앞으로 나가는, 소녀 같으면서 때로는 세련된 여인이 대세이다. 음, 그래서 앨리스가 기억을 잃은 걸까? 어찌되었건 밀라 요보비치는 강하면서도 여린 여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무지 예쁘다! 몸매도 짱이고.

 

  십 년 전에 나온 영화지만, 몇몇 장면들은 참으로 멋지다. 특히 슈퍼컴퓨터인 퀸을 제거하러 갈 때, 그녀의 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부분은 ‘오오!’하고 감탄사가 나올 뿐이다. 영화 ‘큐브’에서 보았던 설정이지만, 더욱 더 세련되고 긴장감을 주고 있다. 음, 큐브가 먼저였나, 이 영화가 먼저였나? 헷갈린다. 아마 큐브일 것이다. 그걸 동생과 같이 봤으니.

 

  이 영화에서는 좀비가 왜 생겨나는지 그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전까지 좀비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걸로만 다루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는 대기업에서 만든 바이러스 치료제의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죽은 세포를 다시 살리는 것으로, 의약품으로 만들면 앉은뱅이도 걸을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감염된 경우에는 그냥 이성은 마비되고 식욕만 남아있는 좀비로 살아나는 것이었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은, 앨리스가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 땅으로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집은 사라진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앨리스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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