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백만 가지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43
최은영 지음, 김은경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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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최은영

  그림 - 김은경


  이제 열 살인 막내 조카. 걸핏하면 ‘할머니 잠깐만~’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나를 가끔 째려보신다. 고모한테서 안 좋은 것만 배웠다고. 하지만 고모는 일을 하다가 나온 대답이고 이 녀석은 텔레비전 보다가 나오는 대답이니 차원이 다르다고 하고 싶지만…….


  문득 어릴 적에 제일 싫었던 것이 텔레비전 만화 보는데 어머니가 심부름 시키던 것이라는 걸 깨닫고 반성한다. 그래서 어른이 먼저 모범을 보여줘야겠다고 ‘네!’라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반응이 그닥.


  그래서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림도 많고 글자 수도 적당하니 호기심이 동할 것 같았다. 특히 그림체가 그 녀석이 좋아하는 개그 캐릭터를 닮아서 말이다.


  현우는 핑계 대장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꼭 남 핑계를 대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또 이치에 아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학교에 지각한다. 왜? 엄마하고 같이 늦잠자서요. 네가 혼자서 일찍 일어나야지. 하지만 엄마가 어제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같이 늦게 잤어요.

  친구가 학원에서 똥을 쌌다. 왜? 화장실 문이 잠겨 있어서. 그러면 열쇠를 챙겼어야지. 하지만 급한데 그런 거 신경 쓸 여력이 없잖아.


  이러니 선생님들도 할 말이 없다. 그럴 때면 현우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그림을 보면, 아주 그냥 좋아서 죽으려고 하는 현우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표정을 보면서, 그림 진짜 적절하게 잘 그렸다고 감탄을 했다. 어쩌면 아이들의 표정을 이렇게 풍부하게 표현을 했을까?


  학교 소풍날. 보물찾기 종이를 하나도 찾지 못한 현우는 친구 승재에게 억지를 부린다. 그가 자기가 집으려던 종이를 가로채는 바람에 넘어지고 다쳤다고. 그러니 자신의 몫으로 하나 더 찾아오라고 시킨다. 그런데 종이를 찾으러 간 승재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무서운 아저씨에게 끌려갔다는 반 친구의 증언이 나오고, 현우는 불안해한다. 자기가 괜히 승재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보내는 바람에,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자신이 주장한 핑계를 생각하며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반. 괜히 억지를 부렸으니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반. 오륙학년이나 중학생 정도였으면 잔머리를 굴리거나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고 빡빡 우기겠지만, 현우는 아직 순진하고 어린 아홉 살, 초등학교 이학년. 여리고 심성은 착한 아이이다.


  교감 선생님과 다시는 핑계를 대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는 순간, 마법처럼 승재가 돌아온다. 이건 뭐랄까, 음. 혹시 교감 선생님과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건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는 나쁜 어른의 생각이니 패스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내가 비뚤어졌다는 증거겠지. 슬프기만 하다.


  어쩌면 그 정도로 핑계를 대는 것에 익숙해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건 그 정도로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일을 완벽하게 마쳤으면, 핑계를 댈 이유도 없다. 못했으니까,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남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 듣기는 싫으니까 온갖 이유와 남 탓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조카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라, 나에게 더 필요한 책이었다. 반성. 또 반성. 조카에게 주지 말고 내 책장에 꽂아두고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꺼내 볼까 했지만, 그건 고모 된 사람의 도리로 할 짓이 아니니 패스. 조카에게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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