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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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안데슈 루슬룬드, 버리에 헬스트럼


  꽃을 든 소녀의 붉은 치맛자락 위로 적힌 ‘비스트’라는 하얀 색의 제목. 표지를 보는 순간 어떤 사건이 펼쳐질 것인지 감이 온다. 오동통한 소녀의 손을 보아하니,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얀 꽃. 붉은 치마. 흩뿌려진 글자들.


  고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어린아이가 희생되는 내용은 뒷맛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감히 집어 들었고, 빠져들었다. 그리고 느꼈다.


  이 책은 후반부를 위해 전반부가 존재하는구나.


  대개의 복수극은, 복수를 완성하는 순간 끝이 난다. 가족이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하는 등등의 사건을 해결하는 가족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영화도 있고 소설도 있다. 그런 작품들은 대개 범인을 단죄하는 부분에서 독자나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권선징악적으로 결말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렇지가 않았다. 탈옥한 소아 성애자에게 처참히 살해당한 어린 딸 마리. 아버지 프레데리크는 복수를 꿈꾼다. 범인이 또 다시 감옥에 갔다가 재판을 받고 형기를 마치고 나오거나, 탈옥을 꿈꿀 수 없게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범인을 사살한다. 여론은 그를 영웅으로 추대한다.


  여기까지가 전반부이다. 당연히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 하고, 그는 살인을 저지를 충분한 동기가 있었고, 면죄부를 받을 정황도 충분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공권력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으면, 그의 딸이 죽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런 흉악한 범죄자를 멍청하게 탈옥시킨 게 문제였으니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개 영화나 소설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글은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다. 전반부가 감성에 호소한다면, 후반부는 이성에 호소하는 느낌. 즉, 개나 소나 개인적인 복수를 해대면 법은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이다.


  프레데리크가 영웅 취급을 받으며 풀려날 때, 그의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소아 성애자들은 죽이거나 괴롭혀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래서 모방 범죄가 일어났다.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이제부터 독자들은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과연 프레데리크의 행동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느냐? 그를 따라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것이 당연하냐? 개선의 여지가 있는 범죄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어떻게 구별을 할 수 있는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민이 스스로 보호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은 프레데리크의 행동이 나쁘다고도 옳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권력도, 검사도, 변호사도 기자도, 심지어 재소자들도 누가 나쁘다 맞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서술할 뿐이다. 그의 뒤를 따른 사람들의 행위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지만, 역시 당하는 입장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 작가의 입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그냥 독자의 판단에 맡길 따름이다.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것은, 이런 책을 읽음으로 사법체계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고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까지는 않지만 수용하면서,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같이 해결해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러기에 피지도 못한 꽃, 어린 마리의 죽음은 너무도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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