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박기형 감독, 최강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감독 - 박기형

주연 - 이미연, 김규리, 박진희, 최강희



  내가 다닌 여자 고등학교에는 괴담이 있었다.


  깊은 밤, 학교 재단 창립자의 초상화가 걸린 중앙 복도에 서서 그림을 마주보면 눈이 움직인다거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 밑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그런 종류였다. 시체 얘기는 그 사람이 일제 강점기 때 열성적인 친일파로 자기 제자들을 종군 위안부로 보낸 전적이 있다는 말과 결합하여 그럴듯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1학년 때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아이의 혼이, 그 날 이후 밤만 되면 학교 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그런 얘기도 있었다. 빛이 비추는 것을 그 유령이라고 착각하여 -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 심야 자율학습을 하고 돌아가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소문일 뿐이었다. 그냥 하품이 나는 늦은 시간의 타율적 자율 학습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선생들의 태도.

  몇 명의 남자 선생들이 선생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여학생들에게 행했던, 일련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던 행동들.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성희롱이다. 영화에서 나온 건 그나마 무난한 편?


  지금이야 교권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서 그런 일이 있으면 당장 난리가 나겠지만, 십년도 전인,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선생의 권위란 실로 무시무시했다. 반항이라고는 꿈도 못 꾸어볼 일이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부르면, 대부분의 부모님들 반응은 '네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선생님이 그러시지.'였으니까.


  학생들은 약자였다. 선생이 부모를 불러서 돈을 요구해도, 빌려서라도 갖다 바쳐야 하는 그런 때였다.


  그래서인지 사춘기를 보내는 어린 학생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에게는 최악으로 느껴질 만한 일들이, 학교에는 더 많았다. 전체가 아닌 일부가 그랬겠지만, 그것들은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학교는 전학을 가거나 졸업을 하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여고 괴담을 보는 내내 예전의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더 실감나게 무서웠고 불편했고, 그들에게 공감을 했다.


  성적 때문에 친구 사이가 멀어지고, 적성과는 상관없이 명문 대학이나 가면 된다는 생각, 적성이나 재능보다는 성적에 좌우되는 풍토, 그리고 하루 3분의 2를 학교에서 보내기에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 사이의 관계까지. 이 영화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을 해서 극을 진행했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잔인하다던가.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런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잡아내는 연출이 멋졌다.


  물론 오랫동안 맺힌 한이 너무 쉽게 풀리는 감이 있지만, 어린 여학생이니까. 마음이 여리니까하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 특수 효과가 요즘처럼 멋지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스토리는 괜찮았다.



  ps - 그렇지만 학교가 그렇게 끔찍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닐만한 뭔가가 있었으니까. 비록 대학을 가기위한 중간 단계라는 생각으로, 졸업하면 돌아보지도 않을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버틸만한 일들은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꿋꿋하게 살아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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