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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우타노 쇼고의 단편집이다.
얼마 전에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너무 인상적으로 읽어서, 작가 이름만 보고 단번에 지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하기도 하고, 추리 소설도 좋아하고, 작가도 마음에 들었으니,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였다.
첫 번째 단편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맛으로 비유하자면, 시원하면서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하얀 생크림 제일 아랫부분에 연 겨자라든지 사워크림을 바른 격? 아니면 31가지 맛을 판다는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입에 넣으면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아이스크림이 밑에 깔려있거나.
초반에 보여준 약간의 비틀림이 막판의 반전과 잘 어우러져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처음부터 상쾌한 맛이 입 안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톡 튀어버리니, 놀랄 수밖에. 그래서 결말을 읽으면서, ‘헐’하고 놀라는 것이다.
물론 범인의 트릭은 속임수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엘러리 퀸처럼 모든 힌트를 다 주는 작가는 드무니까.
현실적이고 돈만 밝히는 탐정 캐릭터엔 큰소리를 내면서 웃어버렸다. 하긴, 예전처럼 탐정의 활약상을 이름만 바꿔서 책으로 내면 곤란하긴 할 거다. 요즘은 개인 정보나 사생활 보호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피해자도 보호해야하고.
‘아, 그렇구나!’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대의 변화라는 건, 탐정의 의식에도 변화를 주나보다. 예전처럼 유산을 물려받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건을 추리하는, 박학다식하고 예의바르며 고상한 탐정은 보기 힘든 세상이다.
두 번째 단편인 [생존자, 1명]은 맛있다고 열심히 먹다가 결국엔 목이 메고 마는, 크림이나 잼이 발라져있지 않은 약간은 단단한 식감의 빵을 떠올렸다. 물론 달달한 맛이 나긴 하지만, 그게 좋다고 계속 허겁지겁 먹다가는 물이나 우유를 부르짖게 된다.
신흥 종교에 빠져 지하철 테러 사건을 일으킨 네 명의 남녀가 외딴 섬으로 피신을 한다. 교주는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리면 외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교단은 그들을 버렸다. 의도치 않게 남은 한명의 입에서 나온 진실. 그들은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인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 명씩 사라진다. 다섯 명밖에 없는 섬에서, 과연 누가 살인자인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자동적으로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읽게 만드는 글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이건 누구의?’ 이러면서 읽다가 결국은 ‘난 바보인가 봐’라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쩌면 처음 먹은 톡 튀는 생크림 케이크를 맛보았기에, 두 번째는 약간 빡빡하지만 단단해서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케이크까지 달면 맛이 다들 비슷비슷해서 별로일 테니까.
세 번째 단편인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진한 커피 향을 오랫동안 입 안에 남기는, 뒷맛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크림이 잔뜩 발라진 케이크였다. 그래서 마지막 케이크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추억에 대한 것이다. 젊은 시절 불태웠던 탐정 소설에 대한 열정.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잊고 말았던 그 시절의 추억. 시간이 지나면서 소원해진 서로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되살리고 싶었던 중년의 고백이 가슴 아프면서도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커피를 마시면서 흥얼거렸던 ‘Twilight Time’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어쩌면 그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았고, 이뤘으니까. 그리고 그 여운이 오래가는 진한 향처럼, 글을 읽는 내 눈과 기억 속에 계속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