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SF는 남성만의 전유물이다. SF는 오로지 우주선 - 또는 우주 전함 - 이 시커먼 우주를 배경으로 포를 쏘아대고 외계인들과 싸워야 한다. SF는 Space Fantasy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살포시 다른 곳을 클릭하길 바람. 왜냐면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은 여자가 썼고 또한 SF는 Science Fiction 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


  언제 들어도 설레는 단어이다. 과거로 갈 수 있다, 또는 미래로 갈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과거에 가게 된다면 깽판을 칠 수도 있고 얌전히 구경만 하다 올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있는 소재란 말인가.

  내가 기억하는 시간 여행물에서 깽판물은 당연히 영화 ''백 투 더 퓨처''였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난리치는 마이클 J 폭스의 고군분투기. 그리고 얌전히 구경만 하는 것은...기억이 나지 않고 깽판치는 시간 여행자들을 잡으로 다니는 시간 경찰물들이 있었다. 그 누구더라 장 클로드 반담이 나왔던 영화가 있었고 TV 시리즈물도 꽤 있었다. 물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소개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는 어떤 류일까?

  코믹 역사 추리 시간여행 우왕좌왕 모험물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이다.

  때는 21세기 중반, 2057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간 여행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물건을 가져올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대 기업들은 그 연구를 외면한다. 다행히 후원자라고 구한 돈 많은 노부인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여왕보다 더 지독한 여자였다. 그녀는 연구팀을 자기 사설 조사단으로 마구 부리면서 예전에 불타버린 성당 복원 사업에 필요하다고 과거로 돌아가서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을 조사해오도록 시킨다.

  주인공 네드 역시 역사 연구가로 그녀의 명령으로 1940년 영국 런던에서 주교의 새 그루터기라는 것을 찾고 있었다. 런던 대공습으로 폐허만 남은 성당을 열심히 뒤지던 그는 결국 ''시차 증후군''이라는 시간 여행자들에게 나타나는 병에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무서운 노부인의 눈을 피해서 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결국 연구팀은 그를 1888년 영국으로 그를 보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게 그 곳에 가서 뭔가 일을 해주고 쉬라는 것이었는데, 그가 아픈 관계로 그리고 그를 찾으러 쳐들어 오는 노부인을 피하느라 임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드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가 말 하나를 잘못한다던가 행동을 잘못하면 그것을 계기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그렇지만 아뿔싸! 결혼을 해야하는 커플을 그만 실수로 만나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덤으로 그 남자는 다른 여자 - 노부인의 증증증조 할머니인데 역시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 - 와 사랑에 빠지고 말이다. 거기다가 그 부부의 손자가 2차 대전에 연합국의 승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연구팀은 뒤집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시간 여행기계는 자꾸 오류를 내고 말이다. 뭔가 역사에 잘못된 부분이 생겻다던가 하는 이유로...

  네드와 베리티 - 역시 시간 연구팀의 일원 - 는 잘못된 만남을 가진 커플을 깨지게 만들면서 역시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아야하는 이중 임무를 띄고, 19세기에서 20세기, 21세기를 넘나드는 모험을 벌인다. 그들은 그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수다가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수많은 인용구들은 각주를 읽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글의 진행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여기에 나와 있는 인용구들이 나오는 책들을 다 읽고 싶다는 의욕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19세기 영국과 21세기 영국의 대비라던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 유머가 700쪽을 넘는 분량의 글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가장 압권은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생각을 가장한 망상일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 잠깐 이 단어가 이 시대에 쓰였던가, 내가 말한 이 작가가 이 시대에 그 책을 냈던가... 가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끝임없이 중얼거리는 그를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 그렇지만 적응력도 빠르고 머리 회전도 좋다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의 활약상을 그린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더운 여름날을 유쾌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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