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그랜드 펜윅 공국은 북부 알프스에 있는 나라로 계곡 셋, 강 하나 그리고 산 (이라고 해봤자 높이 60M)이 하나 있는 길이 8km 폭 5km의 아주 작은 나라이다. 여의도보다는 크고 서울시의 한 개 구 정도의 크기라는데, 정말 작다...
그 나라의 유일한 수출품은 바로 와인! 총 인구 4500명의 공국은 그 수입으로 자급자족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었다. 모든 국민이 농부이고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너무 작고 지리적으로나 자원면으로나 보잘 것 없어서 다른 나라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가는 -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 그랜드 펜윅 공국에 엄청난 일이 닥쳤다. 바로 인구가 6000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자급자족하던 생활에 적신호가 켜진 것!! 희석당 - 와인에 조금만 물을 타서 팔자는 사람들 - 과 반희석당의 대립은 심해지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국을 다스리는 22살난 대공녀 글로리아나는 어디서 돈을 빌려 공국민을 먹여 살리나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책략가이자 삼림 경비 대장인 털리의 조언을 받아 모두가 놀랄 만한 대응책을 발표한다. 바로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거예요. 미국은 평화 협정에 서명만 하면 곧바로 어제의 적을 구하기 위해 식량이며 기계, 피복에 돈, 건축자재에 기술 원조까지 줄줄이 이어진다는 거에요. 돈도 신용도 없는 나라로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다음에 완전히 패배하는 것 이야말로 수지맞고 확실한 방법이 아니겠어요? 전쟁을 벌이고는 곧바로 항복을 하자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 글로리아나 대공녀


  그렇다면 명분은? 다행히도 그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확실한 명분도 있었다. 바로 그들의 유일한 수출품인 그랜드 펜윅 와인의 짝퉁을 미국의 한 기업에서 만들어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헐값에 말이다! 결국 만장 일치로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그렇지만 만사가 그렇게 순조롭게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선전 포고는 관리의 실수로 장난으로 여겨져 무시당하고, 기다리다 지친 그랜드 펜윅은 결국 결사대를 보내서 미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로 한다. 완벽하게 지기 위한 전투말이다. 털리를 대장으로 한 결사대는 배를 타고 - 공국에는 비행장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배도 빌린 것이었다. - 14세기 이후로 전쟁의 ㅈ 자도 들어보지 못한 그들은 사슬 갑옷과 활을 들고 미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한편 미국에서는 코킨츠 박사가 원자 폭탄을 능가하는 Q 폭탄을 만들어 낸다. 폭발과 가스로 대륙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 가공 할 위력을 지닌 폭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니 엄청나게 배꼽잡는 상황의 연속 속에서 그랜드 펜윅의 결사대는 코킨츠 박사와 Q 폭탄을 고국으로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가장 강력한 무기를 손에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세계는 숨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어로 된 제목은 [The Mouse That Roared]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던가?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은 쥐의 으르렁에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이었다.

  1955년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사라진 소련과 아직도 건재한 미국의 냉전을 풍자하고 있다. 그 당시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군비를 확장하고 더 좋은 - 여기서 좋다는 의미는 사람을 많이 죽인다는 의미이다 - 무기를 서로 먼저 만들어 내려고 애쓰던 때였다. 그런데 미 육군 원수의 말을 빌면 공수부대 40명만 있으면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탄을 가졌다는 현실은 그야말로 엄청난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그 작은 나라에 좌우지되는 강대국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였다. 서로를 의식하는 소련과 미국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튀어볼려는 영국 그리고 프랑스... 각국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이 마치 잘 그린 캐리커쳐를 보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편은 정말... 대박이었다.

  그랜드 펜윅의 존경받는 철학자이자 원로이자 삼림경비원 보조인 피어스의 입을 빌어서는 약자와 강자, 약소국과 강대국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폭탄을 만든 코킨츠 박사의 입을 빌어서는 멍청한 정치가들을 비판하며, 각국 원수들의 모습에서는 견제하는 세력간의 다툼을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젊은이, 과학자들을 욕하지 마시오. 차라리 과학자들을 조종하는 모든 나라의 통치자들을 욕하시오. 자기들끼리는 평화에 합의하지 못하고, 그 결과 우리 과학자들을 파괴자의 역할에 가담시키는 통치자들을 말이오. 전쟁이 과학을 그 도구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었으며, 인간의 지식을 힘들고도 어렵사리 결합시켜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이오." - 코킨츠 박사


  계속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다가, 마지막 장의 반전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평화란 무엇일까? 


  과연 평화는 상대를 압도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지켜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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