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Hush, 2016
감독 - 마이크 플래너건
출연 - 케이트 시겔, 존 갤러거 주니어, 마이클 트루코, 사만다 슬로얀
‘매디’는 숲이 우거진 곳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작가이다. 그녀는 어릴 때 사고로 청력을 잃고 말도 못하지만, 무리 없이 생활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사라’가 침입자에게 쫓기며 매디네 집으로 구조 요청을 하러 온다. 하지만 매디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도 들을 수 없는 상황. 결국, 사라는 매디의 집 밖에서 살인범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한편 살인범은 매디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다음 목표로 정하는데…….
살인범에게서 살아남거나 맞서는 건, 보통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특히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살인마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어찌어찌해서 살아남긴 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장애가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주인공이니까 살아남긴 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없는 주인공과 비교하자면, 더 극적이고 보는 이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백 배는 더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귀가 들리지 않았고 말도 못 했으며, 범인은 완전 나쁜 놈이었다. 그는 매디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를 독 안에 든 쥐처럼 갖고 놀기로 한다. 일부러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그녀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특히 매디에게 자신의 가면을 벗어 민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아주 작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녀를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결심 말이다.
그래서 굳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번거로운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와 숨바꼭질할 때, 어디 숨었는지 뻔히 보이지만 놀이의 재미를 위해 못 본 척하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 아이와 숨바꼭질할 때는 웃음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번 경우에는 누군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는 게 다른 점이랄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기에 너무 조용하거나 잔잔한 분위기로 흘러가면 어떨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하나 마나 한, 쓸데없는 거였다. 매디의 속마음을 음성 처리한 것도 있었고, 살인범과의 대치 장면은 대사 같은 거 필요 없이 긴장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다른 리뷰에서 적었지만, 감독인 ‘마이크 플래너건’은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에는 능통한 사람이었다. 물론 결말 부분에서 펑 터트리는 것에 약한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 작품 정도면 괜찮았다.
아, 매디가 부엌에서 청소하는데 밖에서 사라가 울부짖는 장면은 안타까웠다. 한 번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피투성이가 된 친구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전 장면에서 매디가 자신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진동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라가 필사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정도의 진동은 그리 세지 않은 모양이다. 안타깝다. 아니면 매디가 사는 집이 너무 튼튼하게 지어졌거나.
문단속은 잘 하고, 너무 외진 곳에서 살지 말자. 음, 영화나 소설을 보면 어디서 살든지 문제는 생기지만, 적어도 경찰이 가깝게 있는 곳이 나을 거 같다. 그리고 와인 따개는 술을 먹지 않아도 꼭 하나 정도는 챙겨두자. 와인 말고 다른 걸 따야 할 경우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