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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 Hellbound, 2021
제작 – 연상호(연출, 극본), 최규석(극본)
출연 – 김현주, 유아인,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김신록, 류경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들 앞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얼굴이 나타나 죽을 날짜와 사후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예고를 받은 사람은, 그 날짜에 거인 셋이 나타나 그를 잡아간다. 그 존재들이 사라진 뒤에는, 타버린 사체만 남을 뿐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살인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단 한 사람 ‘새진리회’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만이 이것이 하늘의 계시라는 주장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거대한 얼굴은 천사이고 그가 사람들에게 고지를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인 셋은 지옥에서 온 존재로, 죄를 지어 지옥행이 선고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한 다음 영혼을 데리고 간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지옥 시연, 그러니까 세 거인이 나타나 사람을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고 나서야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지를 받은 사람은 곧 죄인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새진리회를 따르는 ‘화살촉’이라는 이름의 무리가 자경단인 것처럼 날뛰기 시작하는데…….
6부작 드라마로,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1화에서 3화까지는, 고지에 관해 알게 되고 새진리회가 세력을 얻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4화에서 6화까지는 몇 년이 지난 후, 새진리회가 정부를 능가하는 힘을 가진 단체가 된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교리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고지가 내려지며, 이를 둘러싼 세력 간의 다툼이 시작된다.
감독이 만들었다는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을 보지 않았기에, 처음 예고편을 보고는 지옥과 연결된 게이트가 열리면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내용인 줄 알았다. 마치 현대 판타지 중에서 헌터물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홈 2020’처럼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내 예상과 매우 달랐다. 그냥 능력을 각성한 인간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물리적인 힘으로 맞서 싸울 거라 여겼던 그런 액션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는, 탐욕과 죄, 구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 그리고 불안함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천사에게서 지옥행 고지를 받았다는 건, 그 사람이 신이 보기에 죄를 지었다는 의미로 결정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선량한 사람이었어도 고지를 받았다면,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죄를 지었다고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고지를 받은 자들의 신상을 파헤쳤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라 강요했다. 이건 반대로 말하면, 고지를 받지 않으면 죄 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도 되었다. 그래서 화살촉 무리가 그토록 날뛸 수 있었던 거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고지를 받지 않았으니까. 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는데, 드라마 중간에 나름 설명을 해준다. 100%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납득은 갔다.
이 드라마에서 신은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인간의 욕망에 희생된 그런 이름뿐인 존재라고 해야 할까? 자기들이 날뛸 수 있는 면죄부를 내미는데 근거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 자기들에 불리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는 그런 허구의 대상? 비록 고지를 내리는 거대 얼굴이 천사이고 사람들을 죽이는 존재가 지옥에서 온 사자라고 하지만, 정작 교단에서 신을 믿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단지 그들의 이익을 내세울 때 신의 이름 뒤에 숨는 것뿐. 음, 이 드라마에서 제일 불쌍한 건 신인가…….
사람들은 고지를 받고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했고, 새진리회에 의지했다. 이건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새진리회 수뇌부는 자신들의 야욕을 채웠다. 이 역시 현재 몇몇 종교지도자들이 벌이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타락한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던 모양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다음 시즌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의 마지막 결말 부분을 보면, 이후 세상은 극심한 혼란으로 빠질 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인간들이 알아서 수습해야 할 것이다. 신이 나타나는 건 뭐랄까, 너무 인위적이고 전형적이며 작위적인 흐름일 것 같아서 패스. 그렇다면 살아남은 인간들이 알아서 수습해야 한다면, 너무도 암울하고 우울한 내용이 될 것 같다. 뭐, 어린 메시아라고 내세울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새진리회 ver. 2.0이 되는 거잖아?
종교의 탄생과 전성기 그리고 몰락하기 직전의 상황을 본 기분이 드는 드라마였다.
그나저나 내가 고지를 받았다면, 죽을 걸 두려워하고 몇 날 며칠을 두려워하며 살까 아니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을 할까 생각해봤다. 흐음, 어차피 지옥에 떨어질 거, 나와 같이 저승길 갈 동료를 강제로 구해놓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