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Escape from Mogadishu, 2021
감독 - 류승완
출연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1990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UN 가입을 위한 아프리카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과 북한의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부패한 소말리아 정부에 반대하는 반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결국, 모가디슈는 정부군과 반군이 대립하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고 만다. 심지어 경비 병력이 없는 몇몇 나라의 대사관은 반군의 약탈 대상이 되었다. 한국 대사관은 ‘강 참사관’의 발 빠른 행동으로 정부군이 경비를 서지만, 북한 대사관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북한 외교관 일행은 대사관을 포기하고 중국 측으로 옮기려 했지만, 이미 그곳도 반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고민 끝에 ‘한 대사’는 북한 외교관 일행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모가디슈를 탈출할 때까지만 일시적인 동맹을 맺기로 하는데…….
3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결말을 말한다고 해도 스포일러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잠깐 해본다. 몇 년 전에 영화 ‘사도 The Throne, 2014’의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역사 공부를 안 받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진짜로 그런 사람은 없겠지? 하여간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라든지 누가 어떻게 했고 누가 죽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다.
이 작품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을 고르라면, 열 살 조금 넘었을 소말리아 아이들이 총을 들고 다니던 부분이라 말하겠다. 어른들이 총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벌벌 떠는 모습이 마냥 재미있다는 듯이, 총구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금방이라도 쏠 듯 말 듯 하는 것이 너무도 오싹했다. 그것도 실탄이 들어있는 채로! 그 아이들이 총이 무엇인지, 그걸 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서 들은 걸까?
그 꼬마들이 직접 약탈했을 리도 없고, 누군가 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줬을 것이다. 그건 누굴까? 바로 어른들이다.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자기들 앞에 세운 것이다. 정부가 워낙에 부패한 상황이라, 반군은 그나마 정상적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들도 정부군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그 아이들이 총이 주는 무게감이라든지 현 상황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면, 좀 비장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어떤 의미로는 오싹함을 주었다. 아이 중 일부는 살아남아서 그 유명한 소말리아 해적이나 군인이 되었다는 말이니까.
그다음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한국과 북한의 사람들이 함께 있기로 한 다음이었다. 어떻게든 다른 나라의 협조를 얻어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던 한국 대사와 참사관이 대사관으로 돌아와서 벌어진 일이다. 정문이 열리면서 북한 사람들만 보이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일순 변한다. 그 긴장감은 으아……. 한국 대사관의 사람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고,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반면에 북한은 열네 명 정도 되었고, 남자의 수는 다섯이나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이건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이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초조함과 긴장감은 수십 분은 지난 것 같았다.
신파가 들어갔을 것 같은데, 의외로 신파가 없었다. 같은 동포, 같은 민족이라는 충분히 눈물을 자아낼 소재였는데, 예상외로 차분하고 덤덤한 결말이었다. ‘이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그 전까지 숨이 멎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자동차 추격 장면을 보여줬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치 전력 질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난 뒤 숨을 고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은 마무리였던 모양이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