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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깊은 밤 갑자기 : 풀슬립 일반판
고영남 감독, 김영애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Suddenly at midnight, 1981
감독 - 고영남
출연 - 김영애, 이기선, 윤일봉, 한혜리
곤충, 그중에서도 나비를 연구하는 ‘유진’은 어느 날 연구차 간 곳에서 ‘미옥’이라는 여인을 데리고 온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무당이었던 모친을 사고로 잃고 오갈 데 없는 상황이 안쓰러워서 집안일이라도 시킬까 데려왔다는 것이다. 부인인 ‘선희’는 마침 일손이 부족해 곤란하던 차에 미옥을 반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희는 남편과 미옥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미옥을 향한 그녀의 태도는 돌변하고, 급기야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장면에 쓰러지고 마는데…….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공포 영화가 아닌 에로 영화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물론 요즘 포털에 이 작품을 검색하면, 푸른빛의 오싹한 포스터가 나온다. 하지만 어쩐지 영화 ‘샤이닝 The Shining, 1980’이 떠오르는 건…….
아, 맞다! 다음 문단부터 스포일러가 주르륵 주르륵 나온다. 40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서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400년 전에 나온 책도 아직 안 읽어본 사람도 있으니까 조심해야겠지. 스포일러 주의!
사실 이 작품을 보면, 정말로 남편과 미옥이 불륜을 저질렀는지 아닌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맞는다면 선희가 본 것은 환상이 아니었고, 아니라면 선희는 헛것을 보고 애먼 사람을 의심하고 죽인 것이다. 영화는 열린 결말처럼, 명확히 매듭을 짓지 않고 끝난다. 도대체 그 밤에 선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선 마지막 장면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선희가 신내림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 매개가 되는 건 아마 미옥이 갖고 있던 목각인형일 것이다. 무당이었던 미옥의 엄마가 남긴 것이라니, 아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처음에는 선희가 아무리 버려도 인형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미옥이 인형의 몸을 빌려 복수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후반부에 가면, 미옥이 피를 흘리며 나타나 인형과 함께 선희를 공격한다. 자신을 죽인 선희에게 복수하거나, 대가 끊긴 무당 집안의 명맥을 잇기 위해 그녀를 공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신내림을 받은 것이었다면, 선희가 본 장면들은 환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신기 때문에 문 너머의 장면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선희가 미쳐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남편과 미옥의 사이를 의심하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죄책감 때문에 정신이 망가졌을 수도 있다. 인형이 되돌아오는 것도, 사실 그녀가 버려놓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갖고 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미옥의 대신이라는 망상으로 목각인형 변장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미친 것이라면, 남편과 미옥의 사이가 불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녀의 정신 상태가 원래 약간 좋지 않았고, 미옥이 집에 오면서 그게 가속화가 된 것이다. 초반에 약국에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는데 그 영향일 수도 있고, 어쩌면 친구가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도화선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 좀 이상하다. 처음에는 선희의 남편이 집을 자주 비우니까 바람난 거 아니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여자 나이 스물여덟이면 환갑이라며 우리는 서른이 넘었으니 진갑이라는 등의 말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선희가 남편의 불륜이 의심된다니까 피해망상이라며 정신 상담을 받아보라고 얘기한다. 이건 뭐지? 실컷 의심의 여지를 주고는 발을 빼는 건가? 이게 스릴러였으면, 이 친구가 유력 용의자다. 선희를 정신병으로 몰아넣고 남편과 아이를 차지하려는 속셈인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영화는 후반 15분을 남기고 쉴 틈 없이 몰아친다. 그 전까지는 망상증에 걸린 주인공의 에로틱한 상상이 펼쳐지는 작품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위에서 말한 에로영화 포스터 같다는 그 장면들이 이때 펼쳐진다. 하지만 15분을 남기고 작품은 완전히 달라진다. 초중반은 오직 이 부분의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초반엔 청순하고 다소 백치미까지 보이던 미옥이 후반에 그렇게 무섭고 오싹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후반이 오싹해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