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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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 The 8th Night, 2021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2500년 전, 인간 세상에 지옥문을 열려던 요괴가 하나 있었다. 부처는 요괴의 두 눈, 붉은 눈과 검은 눈을 각각 먼 곳에 봉인시켜, 요괴가 활개 치지 못하게 하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한국의 한 고고학자가 붉은 눈이 봉인된 사리함을 발견하지만, 가짜라는 비난에 시달린다. 그는 붉은 눈의 봉인을 풀어,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한다. 붉은 눈은 검은 눈을 찾아, 일곱 명의 사람을 옮겨 다니며 살인 행각을 벌인다.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죽어 나가자, 경찰은 비상이 걸린다. 그리고 두 눈이 만나는 걸 막기 위해, ‘청석’은 속세로 나간 ‘선화’를 찾으라는 명을 받는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람!
만약에 내가 해장국을 좋아하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 해장국을 먹어봤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해장국을 먹어도, 맛있다거나 최고라는 말은 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인 맛을 이미 봤고, 그게 기준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아쉽게도 이미 ‘사바하 娑婆訶, Svaha: The Sixth Finger, 2019’라는 영화를 본 뒤라서 그리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사바하를 보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주연을 맡은 배우가 진짜 연기는 잘 했다. 그뿐일까? 빙의 여고생을 맡은 배우조차 연기가 훌륭했다. 대사도 별로 없던 엑스트라 급으로 포털엔 이름도 없는데, 엄청난 존재감을 내비쳤다. 설정도 뭐 어느 정도 괜찮았다. 화면도 분위기를 잘 살렸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문제는 뚝뚝 끊어지는 장면의 흐름과 어색한 인물의 성격 그리고 스토리텔링이었다. 장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면, 이야기의 흐름이 어긋나는 분위기가 된다.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제대로 와닿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힌트를 주지 않는 건 아니다. 115분이라는 시간 내내, 영화는 자세할 정도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와 과거에 관해 얘기한다. 그런데 뭐랄까, 그렇게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분량을 다른 부분, 예를 들면 인물의 성격 표현에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특히 청석의 캐릭터가 너무 이상했다. 도대체 21세기에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토록 어수룩한지……. 휴대전화 없는 거야 그러려니 해도, 이후 행동이 마치 문명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고대인을 보는 것 같았다. 열 살 정도까지는 현대인으로 살았던 것으로 나오는데 말이다. 게다가 왜 ‘애란’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산골에서 남자 스님만 보다가 인간 여자, 그것도 김유정을 보니 눈이 돌아간 건지 아니면 제작진만 아는 감정의 흐름이나 설정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절에서 묵언 수행할 때는 진중하고 차분한 줄 알았는데, 산을 벗어나고 입을 열면서부터 이상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영화에서 나오길 두 눈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붉은 눈이 밟고 갈 일곱 개의 징검다리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니까, 붉은 눈이 빙의할 일곱 명의 사람 중, 아무나 한 명을 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식으로 마무리를 짓지 않는다. 그러면 그거 봉인에 실패한 거 아닌가? 어떤 기기든, 개발자가 정해놓은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이 작품에서 처음 두 눈을 봉인한 것은, 불교계의 최고 능력자인 부처다. 그런데 부처가 남긴 매뉴얼대로가 아닌, 후발 주자가 자기 마음대로 봉인한다? 어쩐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결말이었다.
마지막에 청석의 이마에 흉터가 남았는데, ‘그게 흉터가 아니라면?’이라는 망상을 해본다.
영화에서 부처가 두 눈이 만나지 못하게 하나는 동쪽 끝에 다른 하나는 서쪽 끝에 묻어두었다고 나오는데, 문득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가다 보면 만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붉은 눈과 검은 눈이 견우와 직녀의 다른 버전 같다는 망상도 해보았다. 견우와 직녀도 까마귀와 까치가 없었다면, 헤어진 기간 내내 다시 만나면 자기들을 갈라놓은 책임자들을 다 조져버리겠다고 분노했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