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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인어공주가 변호사를 만난다면 - 32가지 주제로 살펴보는 문화예술 법 이야기
백세희 지음 / 호밀밭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제 - 32가지 주제로 살펴보는 문화예술 법 이야기
저자 – 백세희
어릴 적에는 동화를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이 있다. 그걸 물어보자, 동화는 현실과는 다르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 동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구나. 그러면 동화의 교훈을 현실에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다른 사람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 다들 어릴 때는 그런 얘기를 입 밖으로 내면 이상한 아이 취급받을까 걱정했던 거였구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의 연장으로, 제목에 끌려 골랐다. 인어공주는 몰라도, 전래동화의 선녀는 나무꾼과 사슴에게 당한 피해자니까 말이다. 예상과 달리 동서양의 전래동화의 불법적인 행위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 전반적인 범위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chapter 1 원래 이런 얘기였던가요?』에서는 동화를 비롯한 영화 방송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히어로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쟤들이 싸우느라 부순 가게나 차는 누가 배상할까?’ 그리고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도 이런 의문은 이어진다. 나무꾼이 저지른 범죄는 어떻게 처벌받을 수 있을까? 나중에 아이들과 부인과 헤어졌지만, 그걸로 과연 충분할까? 선녀는 청춘을 빼앗겼으니까 말이다. 이 챕터에서 그런 상황에 관한, 우리나라의 법에서 적용 가능한 여러 가지 조항을 알려준다. 그런데 ‘심청전’, 생각보다 더 심각한 범죄물이었다.
『chapter 2 그래서 결론이 뭐였더라...』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에 관해 다룬다. 예를 들면, 동화 『구름빵』에 얽힌 문제라든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에 관한 분쟁, 위작과 대작에 관한 논란 그리고 장물을 사게 된 경우 등등. 뉴스에서 한 번이라도 봤던 사건들이기에 더 관심이 갔다. 특히 ‘구름빵’에 관한 문제는 읽으면서도 화가 났다. 회사가 자선단체는 아니기에 자기들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건 받아들이겠지만, 그게 계약자의 몫까지 빼앗는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계약서에 적힌 조항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진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거기다 기업과 개인의 대립이라면…. 그리고 마지막 사례인, 타인의 삶을 소설화한 작가의 이야기는 음……. 어느 정도 창작을 했다면 몰라도, 읽자마자 작가의 특정 지인이 떠오른다면 그건 작가가 게을렀다고밖에 할 수 없다. 소설가를 하지 말고, 르포라이터를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chapter 3 미술관에서 실수로 작품을 깨뜨렸어요!』는 최근까지 뉴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었다. 뉴스에서 본 사례는, 이 책에 나온 실수 수준이 아니라 고의 내지는 무지함의 결과였던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챕터에서는 저작권에 관한 것도 다루고 있다. 리뷰를 올리면서 작품의 스틸컷을 올리거나, 동화책을 찍어서 첨부한다거나, 유튜브에 책을 그대로 낭독하는 영상을 올리는 경우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내 것이 아닌 걸 내 것처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지만.
『chapter 4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는 불매 운동이라든지 오마주와 패러디 그리고 표절 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회사의 물건을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찬찬히 살펴봤다. 그리고 미술품으로 탈세를 하는 이유를 읽으면서, 몇 달 전에 사망한 한 기업인이 떠올랐다. 어떤 이들은 너무 낙천적이고 선량해서 그가 아무도 안 보여줬던 미술품을 드디어 볼 수 있다고 좋다고 얘기하는데, 난 불신 주의자이고 착하지 않아서 그걸 통해 그가 얼마나 탈세했을까가 더 궁금했다.
법은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리도 우리 부모님 세대가 집안에 판검사 하나는 나와야 한다고 난리를 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걸 평범한 일반인이 다 알아서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왕이면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족이 더 신뢰할 수 있고 말이다. 아, 어릴 때 공부 100배만 더 열심히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