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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갈
니테쉬티와리 감독, 아미르 칸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Dangal, 2016
감독 - 니테시 티와리
출연 - 아미르 칸, 파티마 사나 셰이크, 산야 말호트라, 사크시 탄와르, 자이라 와심, 수하니 바트와가르. 리트윅 사호레,
전국대회 챔피언까지 했던 ‘마하비르 싱 포갓’은 돈 되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레슬링 선수를 그만둔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낳아 레슬링 선수로 기르겠다는 꿈을 품는다. 그렇지만 부인과의 사이에 딸만 태어나자, 그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딸인 ‘기타’와 둘째 딸인 ‘바비타’가 자기들을 놀리는 동네 남자아이들을 패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싸웠는지 재연해보라고 한 포갓은, 두 딸이 레슬링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동네 사람들의 야유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치는데…….
이 영화는 실화다. 인도의 유명 레슬링 선수인 기카와 바비타 자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친 아버지 마하비르 포갓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의 해설은 포갓 자매의 사촌 오빠인 ‘옴카르’가 맡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친의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를 입고는 뛰지 못하자 바지를 입히고, 머리가 길어서 힘들어하자 짧게 깎아버리는 마하비르의 모습에 ‘아, 이건 좀…….’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한창 예민할 십 대 초반에! 특히 아이들이 훈련을 빼먹고 친구의 결혼식에 가자, 사람들이 다 모인 곳에서 조카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는 좀 화도 났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의 나이는 열네 살. 만약 기타가 레슬링을 배우지 않았으면, 그 아이도 결혼식을 올려야 하지 않았을까? 기타와 바비타가 인도의 전형적인 여자아이들처럼 행동하지 않았기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반바지를 입고 남자나 하는 레슬링을 하기에 마을의 그 누구도 둘에게 청혼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음, 아빠의 빅 픽쳐?
이런 생각은 뒤이어 나오는 친구의 대사에서 확실해졌다. 그 소녀는 결혼식 파티 내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공짜로 먹고 마시니 좋았겠지만, 그 아이는 고작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 아마 마하바르는 딸들이 금메달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둘은 인도의 결혼 시장에 이름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기타와 바비타는 자발적으로 훈련하기 시작한다.
인도 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당연히 춤과 노래다. 춤과 노래만 빼면 아마 한두 시간은 러닝타임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도 영화는 화려한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무슨 영화였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호러 장르인데도 춤과 노래가 나와서 황당했던 적이 있었다. 이 작품도 인도 영화라 당연히 노래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영화 내용과 상당히 잘 어우러져, 쓸데없이 왜 노래가 들어있냐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억지로 훈련을 받을 때는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아빠 때문에 건강 망치겠어요. 이건 고문이에요.’라는 둘의 심정이 잘 드러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기타와 바비타가 여러 지역 대회를 돌아다니면서 시합을 할 때는, 둘의 용맹함을 잘 드러내는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폭풍이 다가오네. 널 묵사발을 만들 거야. 뼈도 못 추리게 될 거야.’라는 가사의 노래가 나온다.
영화는 161분, 그러니까 두 시간 사십 분짜리다. 내 평소 습관대로라면 분명히 두세 번은 딴짓하고, 한 시간 반이 지나면 언제 끝나냐고 바닥까지 다다른 집중력을 겨우 붙잡으며 지루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딴짓을 했을 뿐, 이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후반부에 기타의 결승전 장면에서는 어떻게 될지 너무 조마조마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 집중력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 그동안 봐왔던 작품의 문제였던 걸까?
영화는 노골적인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사회 비판도 하고, 인도에서의 여성 인권에 관한 이야기도 슬쩍 들이민다.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자막으로 기타와 바비타 이후, 수천 명의 인도 소녀들이 레슬링을 시작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린 기타를 연기한 배우의 당당한 눈빛이 인상적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