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The Lodge, 2019
감독 - 세베린 피알라, 베로니카 프란츠
출연 - 라일리 키오, 리차드 아미티지, 제이든 마텔, 리아 맥휴
‘에이든’과 ‘미아’의 부모는 별거 중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아직 미련이 있지만, 아빠에게는 ‘그레이스’라는 애인이 있다. 아빠가 그레이스와 결혼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한 날, 엄마는 자살한다. 에이든과 미아는 이게 다 아빠와 그레이스 탓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자살하고 6개월 후, 아빠는 남매에게 성탄절 연휴를 산장에서 보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조만간 그레이스와 결혼할 테니, 그녀와 친해질 시간을 가지라는 말을 한다. 아이들, 특히 에이든은 격렬하게 반대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급기야 아빠는 일이 있다며 아이들과 그레이스만 산장에 남겨두고 떠난다. 그레이스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아이들은 그녀를 거부한다. 그러던 중,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데…….
영화의 초반은 조용했다. 대사도 별로 없고, 배경음악은 잔잔했으며, 집의 여러 장소를 천천히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하지만 벌어진 사건은 충격적이다. 식당에서 엄마가 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조용히 지나간다. 한 발의 총소리만 들릴 뿐, 비명이나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아마 영화를 보다가 딴짓을 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영화는 계속 그런 분위기였다. 눈으로 뒤덮인 겨울 산에는 도시의 소음 대신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게다가 수북이 쌓인 눈은 문소리나 발걸음 소리마저 차단하는 듯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어떨 때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또 어떨 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한다. 특히 초반에 그레이스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벌어진 집단 자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때문에 남매의 아빠와 만날 수 있었다고 알려준다. 이 때문에 과연 이 모든 것이 그녀가 겪는 환각인지 아니면 거기서 당한 일 때문에 정신병이 심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종교 집단에서 생존자가 또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보는 내내, 남매의 아빠를 향한 욕설과 분노를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싫은 부인이라지만, 이혼해달라니까 자살하는, 그것도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자살해버린 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레이스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고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달랑 6개월 만에 재혼하겠다 발표한 건 너무한 게 아닐까? 아이들과 제대로 얘기해보지도 않고, 물론 아이들은 그레이스를 원해 싫어했으니까 찬성할 리 없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통보하듯이 말하고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놓고 일이 생겼다고 셋만 남겨두고, 좋은 시간 보내라고 홀랑 가버린다. 뭐랄까, 셋의 문제는 셋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그런 심보 같았다. 자기는 거기에 끼기 싫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그런 식? 이건 마치 로맨스 장르에서 남녀 둘을 밀폐된 공간에 밀어 넣으면 없던 애정이 생긴다는 클리셰를 보는 것 같다. 문제는 이 셋은, 그런 류의 애정이 생길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이혼하자니까 애들이 있건 없건 자살해버리는 엄마도 독종이고, 애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좋은 일만 하는 아빠도 무책임하다. 그런 부모 밑에서 살아남으려니, 아이들이 독하고 독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악몽 같던 과거를 뒤로 하고 새 출발을 하려던 그레이스만 안쓰러운 영화였다. 물론 자세히는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그레이스가 그 부부의 별거 이유였다면 안쓰럽다는 건 취소! 그건 나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