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Nobody, 2020
감독 - 일리야 나이슐러
출연 - 밥 오덴커크, 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 코니 닐슨, 크리스토퍼 로이드
‘허치’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부인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사춘기 아들과 데면데면하며, 어린 딸의 애교에 좋아라하는, 평범한 중년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제압하려 했지만, 강도에 잡힌 아들의 안전을 위해 허치는 지갑과 돈을 주며 그들을 돌려보낸다. 이 일로 주위의 비웃음과 아들의 무시를 받지만, 그는 참아낸다. 하지만 딸이 아끼는 고양이 팔찌가 사라졌다는 말에 허치는 강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던 중, 버스에서 여성 승객을 희롱하던 무리를 처참하게 박살 낸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당한 일당 중의 한 명이 러시아 마피아의 가족이었고, 조직은 허치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
미리 얘기하지만, 이 영화, 스토리는 상당히 허술하고 구멍투성이다. 그런데 액션 장면은 그 허술함과 구멍을 메울 정도로 좋았다. 이야기를 보지 않고, 영상만 본다면 꽤 속 시원할 작품이다.
‘ㅋㅋㅋㅋ’만 나오는 설정이라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건 말하고 싶다. 전직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다가 개념과 양심 그리고 싸가지를 블랙홀로 보내버린 양아치들과 얽히는 바람에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설정의 영화가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바로 ‘존 윅 John Wick, 2014 ’이다. 그래도 그 영화는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이자 가족 같은 강아지를 죽이는 놈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체험 학습을 시킨다는, 자연스럽고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고양이 팔찌……. 죽은 딸이 남긴 것도 아닌, 살아있는 딸이 예뻐서 좋아했던 고양이 팔찌를 훔쳐갔다고 그가 분노한다. 아들이 처맞는 장면은 넘어갔으면서, 솔직히 그들이 훔쳐갔는지 딸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청소하다 어디로 쓸려 들어갔는지 모르는 고양이 팔찌 때문에 행동에 나선다. 게다가 기껏 찾은 2인조 강도단에게 어린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꼴랑 한 대 때려주고는 그냥 돌아선다. 사실 강도들은 고양이 팔찌가 뭔지도 몰랐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사건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진다. 어떤 그룹은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를 노래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버스 안에서 일 대 다수의 격투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에 복수하려는 조직이 허치를 찾아내고 공격하면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고양이 팔찌는 영화의 메인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냥 그가 밤에 외출할 계기였을 뿐. 설마 존 윅이 강아지였으니까,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양이를 내세운 걸까?
하여간 스토리에 집중하면, 이 영화는 재미있게 볼 수 없다.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 건 오늘 했던 모든 말 저 하늘 위로 보냈던 모 가수의 노래처럼, 나는요 (다 쳐부수는) 오빠가 좋은 걸이라고 응원하면서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 응원하면서 보면 무척이나 신나게 즐길 수 있다.
영화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가 한없이 진지하고 암울했다면,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결말도 상큼하고 액션 장면도 화려하고 살벌한 것이 흥미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