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Agatha Christie's Poirot, 2008
출연 – 데이빗 서쳇, 휴 프레이저
벌써 포와로 시즌 11이다. 천천히 아껴봐야 하는데,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쭉쭉 진도를 나가고 있다. 진정하자. 이번 시즌에도 역시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어쩐지 포와로가 감탄사나 간단한 문장을 프랑스어로 하는 빈도가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포와로가 대화를 하는데 ‘포와로가’라고 자주 말한다. ‘포와로가 소개하겠습니다.’라거나 ‘포와로가 하겠습니다’처럼 말이다. 어쩐지 어린아이가 자기 이름을 넣어서 ‘ㅇㅇ는요~’하는 게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Mrs McGinty's Dead』은 소설 ‘맥긴티 부인의 죽음 Mrs. McGinty's Dead, 1952’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을에서 파출부로 일하던 여인이 살해당한다.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사람은 그녀의 집에서 하숙하던 청년 ‘벤틀리’. 그러나 그를 체포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아낸 총경은 뭔가 미심쩍다. 증거만 보면 벤틀리가 범인이지만, 총경의 오랜 감으로는 어쩐지 그는 범인이 아닌 것 같다. 그는 포와로를 찾아와 사건을 재조사해달라고 부탁한다. 포와로는 이 사건이 오래전에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거를 묻지 말라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연좌제는 금지한다는 법조항이 있다. 이번 에피소드는 부모의 죄가 자식에게 이어지느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Cat Among the Pigeons』는 장편 ‘비둘기 속의 고양이 Cat Among the Pigeons, 1959’가 원작이다. 한 명문 사립 여학교에서 선생이 살해되는 일이 벌어지고, 도난 사건과 함께 유학 와있던 어느 나라의 공주가 사라진다. 마침 학교 행사에 참석해있던 포와로는 교장의 부탁으로 사건을 수사하는데…….
후반부에 등장하는 원작과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포와로가 등장한다. 그 때문에 포와로의 인맥 범위가 상당히 넓게 변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탐정을 찾아서 의뢰한 사건이 많았는데, 갈수록 지인의 소개나 지인의 부탁으로 사건을 의뢰하는 내용의 빈도가 늘어났다. 역시 인맥이 중요하다! 그나저나 원작에 있던, 수많은 여학생에게 둘러싸인 포와로의 모습이 없어서 아쉬웠다.
『Third Girl』는 소설 ‘세 번째 여자 Third Girl, 1966’를 영상화했다. 어쩌면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노마’가 ‘올리버 부인’의 소개로 포와로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너무 늙었다며 돌아가는데, 이 발언으로 포와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도대체 그녀가 누구인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그는 올리버 부인과 함께 사건으로 뛰어드는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악질적인 범죄자가 등장한다. 아, 생각하면 할수록 나쁜 놈이다. 하긴 이것저것 배려하고 너무 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겠지. 사람을 너무 믿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Appointment with Death』는 장편 ‘죽음과의 약속 Appointment with Devil, 1938’을 드라마화했다. 여행하던 포와로는 한 가족과 우연히 동선이 겹치게 된다. 경제권을 틀어쥐고 권위주의적이며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아이들을 길들인 어머니 ‘보인튼’ 부인, 어머니를 증오하면서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자식들, 그리고 사막의 유물 발굴에만 집중하는 새아버지. 그러던 어느 날, 보인튼 부인이 살해당한다. 사막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곳에서! 포와로는 사건을 조사하는데…….
범인의 수법은 원작과 비슷한데, 동기가 달라졌다. 원작의 동기보다 드라마의 동기가 더 절절하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음,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사람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트라우마가 남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을까? 이미 폭력에 물든 어린 시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 다른 충격과 공포를 주게 된 건데? 사실 이번 이야기의 희생자는 더 일찍 죽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워보자. 천천히, 아껴보자.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