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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원제 - The Doll, 2011
작가 - 대프니 듀 모리에
외국 작가의 글이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대개 첫 작품보다는 명성을 얻게 한 이야기들이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게 인기를 끌면, 초기작이 이후 소개된다. 그런 경우야 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전집으로 나올 때도 이야기가 발표된 순서가 아닐 때도 있으니 뭐…….
이 책은, 작가의 초기작을 모은 단편집이다. 총 13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흐음? 서양은 13을 불길한 숫자로 생각하지 않나?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인가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순서대로 접하면,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 가수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랄까? 데뷔 초의 상큼발랄한 가사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고 자아 성찰과 타인에 관한 생각이 느껴지는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이 단편집 역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처음 몇 작품은 뭐랄까, 다소 모호하다는 느낌을 주는 표현이 더러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는 지 알 것 같지만 명확하지 않은, 그냥 분위기라든지 추측으로 ‘이런 거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인형』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명쾌하지 않은 찝찝함이 남았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면, 그런 모호함이 점차 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딱 짚어서 얘기하지 않지만, 이걸 말하는 거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인간관계에 관해 냉소적이고 몽환적이면서 우울하고 예민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건 뭐, 작가가 십 년 정도 결혼생활 하면서 남편이랑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남편과 거의 남남 비슷하게 지낸 적이 있는 사람 같은 그런 분위기? 『성격 차이』라든지 『주말』, 그리고 『오래가는 아픔은 없다』는 두 남녀의 입장 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자연스럽고 그럴듯했다. 또한, 『피카딜리』에서는 사랑에 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에서 극에 달했다. 도대체 작가 주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이런 불안하면서 아슬아슬한 미묘함을 종이 위가 아닌, 공기 중에 흩뿌릴 수 있는 걸까?
아, 이 책의 작가는 ‘대프니 듀 모리에’이다. 대표작은 바로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뮤지컬로 공연되는 ‘레베카 Rebecca, 1939’다. 그리고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모두 작가가 25세가 되기 전에 집필했다고 한다. 특히 첫 단편인 ‘동풍’은, 19세 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천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