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Marionette, 2020
감독 - 엘버트 반 스트리엔
출연 - 데클라 루튼, 피터 뮬란, 일라이저 울프, 에문 엘리엇
아동심리 치료사인 ‘메리언’은,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그 일을 잊기 위해 그녀는 스코틀랜드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매니’라는 소년을 만나는데, 그 아이는 그림만 그리고 사람들과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메리언은 교통사고를 목격하는데 그 현장이 매니가 그린 그림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후, 매니가 그린 그림과 비슷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메리언은 자신이 오기 이전에 그를 돌봤던 전임자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는 도망가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매니가 그린 그림 그대로…….
** 이후 영화의 결말까지 다 얘기할 가능성 99%임
** 스포일러 싫어하는 사람은 주의 바람!
이 영화 역시, 포스터가 스포일러를 하고 있다. 포털의 포스터를 보면, ‘소년이 그리면 현실이 된다’라든지 ‘내 말이 맞죠, 이렇게 될 거라고’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면 당연히 영화를 보기도 전에 주인공 소년과 의사의 사이가 어떠할지 짐작하게 된다. 소년은 자신의 힘을 숨기는 듯하지만 숨기려 하지 않고, 의사를 비롯한 다른 어른들은 소년의 그림을 낙서 취급하다가 결국 그 힘을 믿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그런 흐름이 될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소년의 힘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맞서거나,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소년과 의사, 두 사람의 팽팽한 기 싸움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과연 제작진은 어떤 내용과 흐름을 보여줄지, 소년의 힘은 어디까지일지 기대를 하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전자의 경우였다. 소년은 대놓고 힘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의사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소년의 힘을 믿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모든 것을 되돌리려고 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은, 소년이 만들어낸 세계라는 것을.
소설 중에, 주인공이 즐겨 읽던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있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설정인데, 여기서 소설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고뇌에 빠진다. 사람들에게 과연 이 세상이 소설 속의 세상이고, 너희는 활자로 존재하는 캐릭터일 뿐이라고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 설정이 떠올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가 밖에서 왔다는 걸 처음부터 알지만, 영화의 의사는 결말에 가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는 점도 그제야 알게 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꼬꼬마 아이였다니 얼마나 허탈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영화가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면을 다루면서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에게는 별로였다. 이런 기본 소재와 설정으로 어떻게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었는지 그 능력에 감탄했다. 인간과 신에 관해 얘기하는 의사와 친구들의 대화에서 뭔가 철학적이면서 심오한 존재론적인 접근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의사가 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사느니 돼지나 식물이 되는 게 낫다고 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열정적으로 분노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뜬금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햇살을 바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앞서 나왔던 그 대사와 연결되어 모든 것을 체념하여 꼭두각시로 사느니 식물처럼 조용히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 대사가 의미를 가지려면 이후 의사의 행동이나 대사와 연관 지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토론회에서 의사와 친구들이 하는 대화는 현학적인 척하려는 지식인들의 말장난에 불과했다.
광고는 ‘더 보이 Brightburn, 2019’나 ‘크로니클 Chronicle, 2012’처럼 해놓았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쩐지 예고편과 포스터에 속은 느낌이다. 장르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되어 있는데, 그런 장르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다. 사건·사고가 생기고 사람이 죽는다고 다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