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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가족놀이 ㅣ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R.P.G. 2001
작가 – 미야베 미유키
‘도코로다 료스케’라는 중년 남자가 주택가의 신축 공사장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그의 주변을 조사하던 경찰은, 얼마 전 살해당한 여대생 ‘이마이 나오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죽은 료스케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세 사람과 가족 놀이는 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심지어 ‘가즈미’라는 가상 딸의 이름은, 료스케의 친딸 이름과 똑같았다. 경찰은 아버지가 누군가와 만나는 것을 봤다는 딸 가즈미의 증언에, 가족 놀이를 했던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매직미러 뒤에서 친딸인 가즈미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와 딸 가즈미 그리고 아들 ‘미노루’가 차례로 조사실로 들어오는데…….
예전에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가족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게시판이나 채팅창에 적은 글만으로 친분을 쌓아가다가 가족처럼 지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지 거의 이십 년이 되었으니, 저자도 아마 그 당시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난 거기에 참여해본 적은 없는데, 그렇게 노는 사람들이 주위에 몇 명 있어서 지켜볼 수는 있었다. 그 놀이는 누군가에게는 한때 유행하는 장난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가족에게서 느낄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맛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족 놀이를 한 사람들 역시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구는 장난삼아, 또 다른 누구는 현실의 가족과는 다른 따뜻함에 이끌리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 등등을 얻기 위해서 놀이에 동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료스케에게는 가정이 있었고, 그 가정에는 소홀하고 어린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는 걸 부인에게 숨기지 않았으며, 인터넷의 가족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가짜 딸에게 진짜 딸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랄까? 친딸과는 데면데면한, 말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면서, 가짜 딸에게는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로 행동했다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이야기는 자신들의 놀이에 관해 털어놓는 가즈미와 미노루, 그 상황을 매직미러 뒤에서 지켜보며 분노하는 가즈미, 그리고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의 삼파전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또 다른 대목에서는 ‘이게 말이야 방구야!’라면서 황당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헐!’하면서 놀랐다.
아,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은 했는데, 그 부분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왜 살인까지 저질렀는지 조금이나마 공감이 갔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난 용기가 없는 쫄보라 살인까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을 거다. 가능하면 피해자 탓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살해당한 료스케의 책임이 60%는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굳이 혈연 관계여야만 가족이 되는 걸까? 그러면 남편과 아내는 피가 안 이어져 있는데? 남보다 못한 혈연 관계보다는,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며 용기를 낼 수 있는 동기가 되는 사이가 더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존재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내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며 죽일 듯한 미움만 남는 관계라면……. 반드시 이성애자인 남녀가 만나 자식을 갖는 것만이 가족이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형태라는 건 좀 보완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