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Death of Me, 2020
감독 - 대런 린 보우스만
출연 - 매기 큐, 루크 헴스워스
‘크리스틴’과 ‘닐’은 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기 전날, 술에 취해 기억을 잃은 밤만 빼고 말이다. 태풍이 몰려오기 전에 섬을 떠나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크리스틴의 여권이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둘은 다시 숙소로 돌아오고,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녹화된 영상을 돌려본다. 그런데 그 영상에는 닐이 크리스틴을 목을 졸라 죽인 후 땅에 묻는 과정이 찍혀 있었는데…….
감독의 이름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왜일까? 검색해보니 ‘쏘우 2 Saw II, 2005’를 비롯해 시리즈 중에 몇 편을 감독했고, 가장 최근에 본 작품으로는 ‘다크 하우스 Abattoir, 2016’가 있다. 아아, 그렇구나.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치를 반 정도 깎았다.
영화는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정을 되짚어가는 크리스틴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왜 기억을 못 하는지, 그렇다면 혹시 누가 술에 약을 탄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 그리고 닐이 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하면 끔찍하다. 내가 애인님이랑 여행을 갔는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 몸은 흙과 잔디가 잔뜩 묻어있고, 목에는 졸린 흔적까지! 그런데 녹화 영상을 보니까 애인님이 내 목을 조르고 날 땅에 파묻고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애인님을 의심하고, 술집을 의심하고, 거기 있던 사람을 의심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여권은 보이지 않고, 가는 족족 이상한 사람들이 보이고, 믿을 사람 아무도 없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크리스틴에 잠시 빙의해보니 진짜 울고 싶은 상황이었다. 외국에서 사건·사고가 생기면 대사관에 가라고 하지만, 요 몇 년 뉴스를 보면 과연 믿을 만한 곳인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그 섬에 대사관이 있는지가 문제이고…….
여기까지 읽으면 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그랬다. 좀 지루했다고 해야 할까? 몰입할 정도로 긴장감이 넘치지도 않았고, 심리물이라고 할 정도로 감정 표현이 풍부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난하고 평범하게 만든 느낌? 이 장르가 호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적이었다. 위에서 기대치를 반 정도 깎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뭐랄까, 서양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양 호러 정서를 따와서 만든, 동양 배경의 서양 호러 영화라고나 할까?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룬 설정이 동양만의 특징이 아닌데, 여기서는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백인 커플이 그들의 마수에 걸려 고생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 가능하면 안 보는 쪽으로, 시간이 남아돌 때 일 순위가 아닌 맨 끝으로 볼 감독으로 말이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국에 여행은 자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