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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학 -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 ㅣ 카이로스총서 68
김형식 지음 / 갈무리 / 2020년 10월
평점 :
부제 -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
저자 – 김형식
처음부터 밝히지만,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잘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제목만 보고 ‘오오!’하고는 도서관에 대여 신청을 올렸다. 부제까지 꼼꼼히 봤다면, 아마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쪽수를 확인했었다면, 애초에 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 좀비라는 존재는 영화와 소설 같은 창작물에서나 볼 수 있었기에, 당연히 그런 쪽에서 다룬 좀비의 역사일 것이라 쉽게 생각했었다. 물론 부두교에서 나오는 좀비도 좀 다루겠지만, 그건 종교 쪽이니 그리 많이 다루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부제는 위에도 적었지만,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이다. 존재론과 정치학? 즉, 내가 예상한 장르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쪽수는 504쪽으로, 앞서 읽었던 ‘살롱 드 홈즈’의 두 배는 되는 분량이었다. 그러니까 가볍고 편하게 읽을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두교 좀비를 시작으로, 최초의 좀비 영화인 ‘화이트 좀비 White Zombie, 1932’부터 한국 드라마 ‘킹덤’까지,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좀비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좀비를 시대별로 나누어, 그 당시와 맞물려 설명하고 있다. 가령 ‘로메로’ 감독의 ‘좀비 시리즈’에서 백인 소녀가 좀비가 되어 부모를 죽이는 장면이라든지 생존자였던 흑인의 마지막을 예로 들어, 그 당시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어떤 진화 단계를 거쳐 영화 ‘28일 후 28 Days Later…. 2002’에서처럼 달리게 되었는지 말한다. 그리고 영화 ‘웜 바디스 Warm Bodies, 2012’에서는 생각하는 좀비 ‘R’을 통해, 좀비의 존재란 무엇인지 얘기한다. 음, ‘웜 바디스’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 않았는데, 저자는 그 작품에 꽤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과 존재에 관해 고찰하고 논리를 펼친 많은 철학자, 예를 들면 데카르트라든지 니체, 스피노자 등을 등장시켜, 좀비와 인간의 차이라든지 그 존재 이유 내지는 존재란 무엇인지 풀어낸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휴머니즘, 후기 자본주의와 테러리즘을 결합하여, 지금의 시대를 얘기한다.
좀비 영화를 많이 봤지만,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좀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시체에 불과한, 이성도 감성도 없는 존재를 너무 띄워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좀비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니까 말이다.
저자도 그런 면을 얘기하고 있다. ‘포스트좀비’라는 단어로, 현대의 좀비란 과연 무엇인지 말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이런 진지한 책을 읽어서인지, 금방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 얘기를 통해 진지함에 접근해서인지, 읽다 보니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랬다. 오랜만에 뇌에 장르물이 아닌, 괜찮은 영양분을 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저자가 언급한 작품 중에는 아직 보지 못한 것도 있는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