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The Inhabitant El habitante, 2017
감독 - 기예르모 아모에도
출연 - 마리아 에볼리, 바네사 레스트레포, 카를라 아델, 쉬라 바질라이
첫째 ‘카밀라’, 둘째 ‘마리아’ 그리고 막내 ‘아나’는 한 의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정보를 받고, 그 집을 털기로 한다. 순조롭게 침입하여 의원 부부를 묶어두고 돈을 찾던 중, 지하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부부의 어린 딸 ‘타마라’가 온몸에 멍이 든 채 손발이 묶여있었다. 분노한 자매는 딸을 풀어주는데, 의원 부부는 그 아이는 자기 딸이 아니라며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각자 흩어져 집을 수색하던 자매는 잊고 싶었던 끔찍한 기억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 영화에 관한 자료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2016’와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1973’가 만났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거기에 ‘프롬 어 하우스 온 윌로우 스트리트 From a House on Willow Street, 2016’ 그리고 ‘테이킹 The Taking of Deborah Logan, 2014’이 떠오른다. 기본 설정은 ‘맨 인 더 다크’인데, 거기에 ‘프롬 어 하우스 온 윌로우 스트리트’를 초중반에 깔고, 중후반은 ‘엑소시스트’였고, 마지막 장면에는 ‘테이킹’을 넣었다. 그러니까 온갖 클리셰의 집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놓고 ‘으악!’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세 자매, 그중에서 카밀라와 마리아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자매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데, 그게 보는 사람을 화나게 했다. 아니 그 XX놈의 XX가 딸을 강간하는 주제에, 딸내미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를 유혹한 거라는 논리는 어떤 우동을 뇌에 집어넣으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딸내미에게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라고 폭력을 행사한다. 미친 XX. 그래서 결국 카밀라가……. 이것이 세 자매의 끔찍한 기억이었고,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매를 따라다니는,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검은 그림자의 등장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악령에 쓰인 타마라가 세 자매는 물론 의원 부부 그리고 신부에게 하는 말들은, 은근히 신경 쓰이고 짜증 났으며 오싹했다. 와, 진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저렇게 대놓고 떠벌리는 사람이 있으면, 패주고 싶을 거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악마에 쓰인 사람이니 내가 도리어 얻어터지겠지…….
마지막 장면을 보고, 감독이 무사히 살아있는지 궁금했다.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설정이라, 과연 종교계에서 가만히 있었을까?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바티칸에서 봐준 건가?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으면,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에 유명 종교 지도자를 연상시키는 사람을 집어넣었다면, 과연 감독은 물론이고 제작사도 무사할지 모르겠다. 아, 애초에 영화를 만들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려나?
악마는 인간의 나약한 틈을 공격한다는 말이 얼핏 생각나는 영화였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라 나약한 틈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악마에게 공격당하는 운명을 타고난다는 말일까? 아, 그래서 인간은 정신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음,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봐도 되는 걸까? 다른 이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 선하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는 악마와 그에 넘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실 카밀라가 망치를 들었을 때,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그걸로 그녀와 동생들은 평생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렸으니 안타까웠다. 정당방위였는데, 왜 죄책감을 느끼니……. 너희가 너무 착해서 그런 거야…….
설정이나 소재는 분명히 오싹하고 으스스한 데, 정작 극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잔잔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중후반에 잠깐 졸았다. 아마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