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A dead woman's illusion 鬼火山莊, 1980
감독 - 이두용
출연 - 김윤미, 남궁원, 한은진, 전양자
병원장인 ‘한민우’는 늦은 밤까지 연구에 몰두하던 중, 잠든 간호사 ‘이경아’를 강간한다. 몇 달 후, 그는 국제 의학회의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다. 부유한 처가에서는 그에게 종합병원을 지어주겠노라 하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축하와 존경을 보낸다. 하지만 이경아가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별장에서 지낼 테니 삼 일에 한 번씩 자기를 만나러 오라며 협박을 한다. 말다툼을 하던 중, 한민우에게 맞은 이경아는 넘어지면서 그대로 죽고 만다. 당황해하던 한민우는 부인이 별장으로 온다는 얘기에 이경아의 시체를 우물에 던져버린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의 주위에 죽은 이경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30년도 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달랐다. 그런데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보는 내내 욕이 절로 나왔다. ‘와, 어떻게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을 했지? 배우들은 저런 대사하면서 창피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리뷰를 쓰려고 준비를 하는데, 여러 번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다듬어도 욕 이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발소에서 면도를 받고 있으면 여자 두세 명이 달라붙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사지를 해주는 게 당연한 거였고, 술김에 집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애를 강제로 이불 속으로 끌어들인 사연을 큰 소리로 얘기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거였나? 그때는 진짜로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
제일 압권인 건, 간호사를 강간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한민우가 피해자 취급받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이경아가 그를 유혹하고자 자는 척하면서 다리를 벌렸다고 해도, 거기에 넘어간 게 당연한 건 아니잖아? 부인이 있고 어린 딸이 있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옳다구나 강간하고는 애를 지우라고 난리 치고 우물에 빠트리기까지 했는데? 그건 죄가 아닌가? 그걸 임신을 미끼로 협박받고, 살해 위기에 몰렸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간은 유혹받아서 어쩔 수 없던 거고, 살인에 시체 유기는 이경아가 살아있으니 상관없다는 거였나? 거기다 이경아는 한민우의 어린 딸을 납치했었으니 2 : 3으로 이경아가 더 죄질이 나쁘다는 결론인가?
거기다 낯부끄러운 저렴한 대사들까지……. 하아, 받아 적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그리고 경찰이 한민우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화룡정점이었다. “박사님, 여자를 조심하십시오.” 사실 이 대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불륜은 안된다는 한민우의 대사가 최악이었다. 강간은 되고 불륜은 안 된다니, 도대체 어떤 우동사리가 뇌에 들어있으면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 이건 우동사리에게 미안한 말이다. 우동사리는 맛있기라도 하지!
하여간 30년 전은 저런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의 지금 나잇대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법이 왜 이 모양인지, 특히 성과 관련된 법이 왜 그따위인지 이해가 갔다.
전에 본, 비슷한 설정의 영화 ‘마의 계단 The Evil Stairs, 魔의 階段, 1964’이 더 나았다.
보는 내내, 내 욕 어휘력은 어쩜 이렇게도 빈약한지 한탄했던 영화였다. 욕 실력을 좀 더 길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