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Vivarium, 2019
감독 - 로르칸 피네간
출연 - 이모겐 푸츠, 제시 아이젠버그, 몰리 맥캔, 조나단 아리스
‘톰’과 ‘젬마’는 새로 살 집을 구하고자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틴’이라는 중개인을 만나는데, 그는 둘에게 어울리는 주택단지가 있다고 알려준다. 마틴과 함께 간 ‘욘더’라는 곳은, 똑같아 보이는 집이 늘어진 대규모 주택단지였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마틴이 사라진다. 당황한 톰과 젬마는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먼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도, 결국 처음 소개받은 9호 집 앞이었다. 아침마다 생필품이 집 앞으로 도착하고, 급기야는 갓난아이까지 배달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이를 기르면 벗어날 수 있다는 쪽지가 붙어있었는데…….
영화의 도입부에 뻐꾸기가 등장한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거기서 태어난 새끼는 원래 둥지 주인의 알이나 새끼를 밀어버리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비바리움(Vivarium, 生态箱)’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작은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스포일러가 펑펑 터지니 주의!
미리 말했음! 스포일러!
뻐꾸기와 영화 제목,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문득 이런 감상이 든다. 아하, 마틴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었고 자기 자식을 기르기 위해 인간을 데려다가 노동을 시키는 거구나. 인간이 양육에 전념하기 위해 의식주를 다 책임져주고, 나름 외롭지 않게 살라고 부부 내지는 커플만 데리고 가는 거였구나. 그리고 자기 자식이 다 크면 역할이 쓸모가 없어지니까 처리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뻐꾸기의 양육방식을 따랐다고 하면 좋을까?
그리고 외계인 가설을 제외하면, 이건 자식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냐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계획적이건 아니건 자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커가면서 말도 지지리 안 듣고, 버르장머리 없이 대들기나 하고 어떨 때는 진짜 내 새끼가 맞나 싶기도 하다. 남편은 일만 하다가 과로사하고, 부인은 이제 아들에게 온 신경을 쓴다. 하지만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를 떠나는 법. 자식은 집이 아닌 세상으로 나가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도 삶은 또 그렇게 이어진다. 또 다른 커플이 집을 구하고, 아이를 기르느라 모든 것을 바치고……. 인간의 삶을 압축시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동물의 삶을 관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세상사가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외계인이 떠넘긴 아이나 기르거나, 자식새끼 기르다가 죽는 게 다인 인생이라니! 물론 영화 이야기다. 하지만 외계인 아이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기르다가 죽는 게 인생이라는 건 대충 맞는 것 같다. 그 아이가 영화에서 나온 아이처럼 지랄 맞지만 않으면 다행이고, 사고 치지 않고 잘 자라기만 하면 로또일 것 같다. 거기다 영화의 아들처럼 엄마에게 자식을 다 키웠으니 죽으라는 패륜짓만 안 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일 테고.
어쩐지 집 사는 거에 목숨 걸지 말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얘기를 하는 영화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