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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감독 - 마이크 플래너건
출연 - 빅토리아 퍼드레티, 올리버 잭슨 코언, 헨리 토머스
원작 –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 The Turn of the Screw, 1898’
어느 커플의 결혼식 날,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때 한 노부인이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입을 연다. 1987년, ‘대니’는 미국을 떠나 영국의 교외에 있는 한 저택으로 향한다. 어린 ‘마일스’와 ‘플로라’ 남매의 가정교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둘은 부모를 잃고, 요리사, 가정부 그리고 정원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유일한 혈육이자 남매의 보호자인 삼촌은 저택으로 조카들을 보러 오진 않았다. 저택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모두 대니를 환영했지만,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데…….
드라마는 음울하고 어두웠으며 섬뜩했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모순된 느낌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런 느낌을 받았다. 특이한 건, 해가 떠 있거나 집 안이나 불 앞에 있다고 따뜻한 건 아니었다. 환한 대낮, 따뜻하게 불이 켜진 부엌에 앉아 있어도 오싹할 때가 있었다. 이건 어쩌면 등장하는 사람들, 심지어 어린 플로라와 마일스까지 비밀을 하나씩 숨기고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등 뒤에 숨긴 게 뭔지 몰랐기에,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기에, 친절하게 웃는 얼굴 뒤에 뭐가 튀어나올지 조마조마했기에, 밝음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드라마는 환하면서 어두웠고 따뜻하면서 음울했다.
‘Haunt’라는 글자가 들어간 영화는 대개, 귀신들린 집이나 물건 내지는 사람이 나와서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하고 비명 지르게 하고 더 나아가 죽여버리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드라마도 그랬다. 블라이 저택에 깃든 유령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까지는 제목에 충실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달랐다. 드라마는 유령이 아닌, 사랑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은, 죽었건 살았건 사랑, 그 하나 때문에 행복해하고 괴로워했으며 고통받았다. 살아서는 사랑이 남긴 아픔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워했고, 죽어서는 사랑과 집착 그리고 미련 때문에 저택을 떠나지 못했다. 아, 그래서 오프닝에 사람들의 초상화에서 눈이 사라지는 걸까? 맹목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정말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애절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의 사랑과 추억만으로 평생을 그리워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생각했다. 아, 그런 사랑이었기에 그 저주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거였구나.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송창식의 ‘사랑이야’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마지막 장면에 그 노래를 틀어놓으니, 눈물이 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아, 그러고 보니 어린 플로라의 첫 등장은 너무도 인상 깊어서 때려주고 싶었다. 좀 조용히 하라고.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니 애가 얼마나 정에 굶주렸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유령이 나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으면서도, 유령이라는 존재에 집중할 수 있게 했던, 마지막엔 감동까지 주었던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