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 The Bridge Curse, 女鬼橋, 2020
감독 - 해악륭
출연 - 잔완루, 장녕, 임철희, 엄정람
‘동후 대학교’에는 ‘여귀교’라는 이름의, 저주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한 계단이 있다. 원래 계단 수는 13개지만, 어느 순간 14개가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뒤를 돌아보면, 예전에 억울하게 살해당한 여학생의 혼령이 찾아온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었지만, 신입생 담력훈련으로 매년 애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동아리에서 신입생 담력훈련을 시행하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기이한 죽음을 맞는다. 4년 후, 전직 앵커가 그들이 죽기 전에 올린 영상을 보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하는데…….
서양 영화보다 아시아권 영화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무섭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동양 귀신이 서양 귀신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그리고 비슷한 피부색. 그래서 동양 호러 영화는 보기 전에는 꽤 많은 기대를 한다. ‘가야코’를 능가하는 귀신이 나오길! ‘주온 Ju-on: The Grudge, 呪怨 2002’보다 무서운 영화이길! 계속해서 말하지만, 내 공포 영화의 기준은 주온이다. 아, 물론 오리지널과 극장판 1편과 2편까지만. 하여간 이 영화는 설정을 읽는 순간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 Whispering Corridors 3 : Wishing Stairs, 2003’이 떠올랐지만, 매우 달랐다. 여고괴담의 계단은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있었고, 이 작품의 것은 목숨을 앗아간다. 살 방법이 있긴 한데,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영화는 열네 번째 계단에서 뒤를 돌아본 학생들에게 어떤 죽음이 닥쳤는지 보여주고, 동시에 전직 앵커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래서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고, 연결이 안 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후반부에 가서 밝혀진다. 그렇다. 두 사건의 시간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두 시간대에 동시에 존재했던 누군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귀교의 진정한 저주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영화는 호러이면서 스릴러적인 면도 있었다. 글로 보니 말이다.
실제로 보면 조금은 심심했다. 두 시간대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다 보니까 시간 배분의 문제가 있었던 걸까? 한참 분위기를 잡다가 후다닥 죽여버리고 화면을 넘겨서인지, 아니면 분위기 조성에 실패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귀신이 나오고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 다니다가 죽어 나가는데, 그냥 그랬다. 그리 긴장감을 주지도 않고, 눈을 가릴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도 않았다. 귀신의 등장이나 모습은 20년 전에 나온 가야코가 더 오싹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했다는데, CCTV 영상이나 아이들의 노트북 내지는 온갖 메모나 기록장 등을 증거품으로 하나도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동아리방에 뒀다는 것도 이상했다. 필요 없었나? 그런데 전직 앵커는 어떻게 거기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았지? 경찰이 조사를 한 게 아니라 하는 척만 한 건가? 아니면 전직 앵커가 뛰어난 탐정 능력의 소유자?
나에게는 좀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하지만 공포 영화를 잘 못 보는 사람에게는 오싹할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