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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 정세랑
M 고등학교의 보건교사인 ‘안은영’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바로 사람이 남긴 사념인 엑토플라즘을 젤리 형태로 볼 수 있고, 그걸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보건실 캐비닛에 야광봉과 비비탄 총, 성수, 염주와 같은 여러 물건을 숨기고 있다. 어느 날, 안은영은 재단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교사인 ‘홍인표’가 거대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특이 체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젤리를 볼 수 없기에 홍인표는 장난감을 들고 다니는 안은영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사건을 하나 겪은 후, 그는 안은영의 지지자이자 친구가 되는데…….
안은영과 홍인표가 같이 사건을 파헤치거나 도움을 주는 기본 설정을 가진, 총 열 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된 책이다. 드라마를 미리 보고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리뷰에도 적었지만, 사건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빠진 부분을 상상으로 메꾸면서 봤는데, 책은 드라마에서 느꼈던 빈칸을 꽉 채워줬다. 옴을 먹던 옴잡이 소녀는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원어민 영어 교사는 그 사건이 끝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등, 간략하게나마 언급해주었다.
열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사랑해 젤리피시』, 『토요일의 데이트메이트』, 『럭키, 혼란』, 『원어민 교사 매켄지』, 『가로등 아래 김강선』 그리고 『전학생 옴』 은 드라마에서도 다룬 내용이지만, 몇몇 부분은 달랐다. 드라마화하면서 인물의 성별이라든지 시간대 등등을 바꾼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 역시 몇몇 설정은 비슷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와 같지는 않았다. 그냥 그게 이게 아닐까 싶은 그런 느낌?
『오리 선생 한아름』과 『온건 교사 박대흥』은 책에만 있는 이야기인데, 드라마로 만들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온건 교사 박대흥’은 나름 온건한 방식으로 제도에 대항하는 내용이라 뺀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국정 교과서 논란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레이디버그 레이디』는 초반만 드라마에서 맛보기로 보여줬었는데, 여기서는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도 궁금했는데 다행이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학교를 노리는 집단이라든지 안은영의 조언자로 등장했던 인물은, 책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만든 캐릭터들인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안은영과 홍인표 둘의 사이에서 동지애라든지 끈끈한 정 같은 게 느껴졌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일과 사람에 치여 모든 것에 시큰둥한 안은영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드라마도 괜찮았는데, 책은 더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