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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평점 :
저자 – 곽재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어떤 사람들은 귀신이나 악마 내지는 천사라고 답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을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추상적인 존재 말고 구체적으로 형태가 있는 걸 답하라면, ‘박테리아’를 떠올리지 않을까?
영어로는 ‘bacteria’, 한글로는 ‘세균’. 안경의 발견 이후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작은 생명체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존재. 이 책은, 그런 세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1부는 『과거관』으로 세균의 첫 발견과 이후 연구 역사, 그리고 세균의 진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광합성을 하는 세균이 등장하면서 이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역사서에 기록된 기이한 자연재해와 세균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려준다.
산소로 숨 쉬는 인간 이하 다른 생물들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생명체에게는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의 등장은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아니었을까? 문득 요즘 일어나는 환경 문제도 인간에게는 천재지변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생명체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삼국사기》라든지 다른 역사서에 기록된 현상들, 예를 들면 강물이 핏빛으로 변한다거나 거인의 시체가 물 위에 떠 올랐다는 현상이 어쩌면 적조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약성서에 실린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2부는 『현재관』으로 최근까지 세균 연구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어떻게 세균과 공생하면서 살아가는지 예를 들고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세균의 위험성에 관해서도 알려준다.
김치나 장이 집집마다 다른 이유가 세균의 영향이라는 부분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기분은 좀 그랬다. 뭐랄까, 발효라든지 아미노산이라는 단어는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데, 세균이라는 단어에는 막연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세균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서인가보다. 그리고 대장균에 관한 색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책에서 보면 ‘카스파제’라는 세포 자폭 효소가 있다는데, 대장균과 카스파제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졌다. 카스파제가 동시에 모든 세포에 작동하면 사람의 몸이 녹아버린다는데, 그럼 영화에서 킬러들이 사람의 사체를 녹여 없애는 건 그 효소를 이용한 걸까?
3부는 『미래관』으로,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루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더 나아가 세균 연구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계기를 주고 있다.
여기서는 ‘바이러스’의 등장에 관해 다루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건지, 항생제의 발전 때문에 새로운 질병이 발생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요즘은 하수처리장에서 세균을 이용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배웠다. 합성세제보다는 세균이 더 친환경적이긴 하겠지.
4부는 『우주관』으로 말 그대로 지구 밖으로 눈을 돌린다. 만약 외계 생명체가 존재하거나 인간이 지구 이외의 행성에 정착할 때, 외계 세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한다.
외계인이나 우주로 진출하는 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세균을 진지하게 다룬 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잘 활용하면 꽤 재미있는 작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과학 관련 서적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 수학과 과학을 포기한 나에게는 특히 더 어렵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책은 그냥 쉽게 술술 읽혔다. 분명 어려운 과학 용어가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어쩌면 저자가 과학적 현상을 얘기할 때 들어주는 예시가 너무 적절하고,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 이런저런 예와 농담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학 교과서를 이 저자에게 맡겼으면, 과학을 포기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