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Ju-on: Origins 呪怨: 呪いの家, 2020
감독 – 미야케 쇼
출연 - 아라카와 요시요시, 쿠로시마 유이나, 리리카
거의 매번 호러 영화 리뷰를 쓸 때마다 말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제일 무서운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주온 The Grudge, 呪怨: Ju-on, 2002’이라고. 그리고 오리지널 비디오판과 극장판 두 개까지만이라고 덧붙인다. 처음 본 지 거의 20년이 돼가지만, ‘가야코’의 등장장면은 아직도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다. 아마 그 전까지 비축해놓은 긴장감과 어두침침한 화면, 분장, 그리고 귀를 거스르는 소리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주온 드라마 판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제발’이라는 간절함과 ‘왜!’라는 황당함이 동시에 들었다. 극장판 두 번째 이후의 작품들은, 주온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바닥을 뚫고 내핵으로까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사실 망치지만 말고 보통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뭐? 가야코가 안 나온다고? 토시오도 안 나오고? 아, 기대감이 가루가 되어 날라간다.
하지만! 그러나! 그런데도! 반면에!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본 드라마는 생각보다 좋았다. 드라마는 80년대부터 1997년까지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다. ‘주온 비디오 판’이 1999년에 나왔으니, 가야코와 토시오가 등장하기 2년 전까지 그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토시오의 아빠가 사건의 원흉이긴 했지만, 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는 원인이 따로 있었다는 말이다. 거의 20년에 걸친 원한과 증오, 억울함, 타락한 욕망, 공포, 절규 같은 감정들이 벽돌 하나하나에, 나무기둥 사이사이에, 벽지 무늬 틈틈이 서려 있었다.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희생자를 내면서 힘을 얻어 강해지고, 또 다른 희생자를 불러들여 저주의 강도가 세지기를 반복해왔다.
전에 주온은 그래도 집에 들른 사람만 저주를 내리니 다행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아마 ‘오노 후유미’의 소설 ‘잔예 殘けが, 2012’와 비교해서 그랬을 것이다. 잔예는 더러움(저주)을 묻힌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죽으면 그 집에서 또 다른 더러움이 자란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비록 가야코나 토시오가 나오지 않았지만, 문제의 집을 다녀온 사람은 하나같이 불행해졌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게 이해가 가는 과정이어서 더 잔혹하게 다가왔다. 전학 가자마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동급생에게 강간당하고 악령에 노출된 학생이 할 수 있는 게 뭐였을까? 더군다나 엄마라는 사람은 딸을 창녀 취급하면서 담임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잔예처럼 더러움의 범위가 넓어지지는 않지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는 주온이 더 가혹한 것 같았다.
드라마는 일본의 80년대와 90년대를 그 당시 논쟁거리가 되었던 사건을 뉴스 보도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뉴스를 보면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아마 자기들이 처한 상황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는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 또 그렇지 않았다. 전에 주온 극장판에서도 나왔지만, 시공간이 마구 뒤섞이면서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기도 하고, 과거의 악령이 현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끔찍하게 다가왔다. 아무런 대사도 없었지만, 그 표정과 몸짓이 너무도 오싹했다. 피와 살점이 튀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런 장면이었다.
보는 내내, 아니 보고 나서도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은, 너무도 음울하고 음습하며 잔혹했던 드라마였다.
그래도 잔예와는 설정이 다르니까, 집을 허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금 품어본다. 그렇지 않으면, 꿈도 희망도 없는 너무도 암담한 세상이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