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 -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이 책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방송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방송을 다 수록한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만 실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언급한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간략히 첨가하였다.
『1부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는 ‘가정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한 영화는 ‘가스등 Gaslight, 1944’,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 1991’ 그리고 ‘돌로레스 클레이번 Dolores Claiborne, 1994’이다.
『2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순응한다』는 종교와 권위에 대해 비판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사바하 娑婆訶, SVAHA : THE SIXTH FINGER, 2019’, ‘컴플라이언스 COMPLIANCE, 2012’, 그리고 ‘곡성 哭聲 THE WAILING, 2016’을 이야기한다.
『3부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는 ‘성범죄’를 다루고 있다. ‘미저리 Misery, 1990’. ‘걸캅스, 2018’ 그리고 ‘살인의 추억, 2003’을 소개한다.
『4부 만만한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계층 문제’를 이야기한다. 언급한 영화는 ‘기생충, 2019’, ‘숨바꼭질, 2013’ 그리고 ‘조커 Joker, 2019’다.
마지막 『5부 결국 가장 중요한 의제 강간 연령』은 미성년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논의한다. 네 개의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번지 점프를 하다, 2000’, ‘꿈의 제인, 2016’, ‘믿을 수 없는 이야기 Unbelievable, 2019’ 그리고 ‘팔려 가는 소녀들 I Am Jane Doe, 2020’이다.
다섯 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었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를, 성범죄를 비롯한 많은 범죄에서 어떻게 보호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성범죄 사건들, 예를 들면 ‘버닝썬 사건’이나 ‘n번방 사건’ 그리고 ‘다크웹 아동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 사건’의 처리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2004년 밀양 집단 강간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은 분노했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졌을까? 여전히 집단 강간 사건은 일어나고 그때마다 분노하고 난리가 나지만, 그걸로 끝이다. 2004년 때 확실히 처벌하고 법을 제정했으면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음주 운전에는 엄격하지만, 음주 강간에는 관대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피해자의 앞날보다 가해자의 앞날을 더 고려하고 보장해준다. 이건 재판부의 문제도 있지만, 그들이 기준으로 삼는 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영화와 관련된 여러 사건 이야기를 보면서, 인간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인류애가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도 힘들었고, 리뷰를 쓰는 것도 힘들었다.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처음 제작진이 이수정 교수에게 프로그램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하자, 이런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곳에서 많은 실제 범죄 수사를 다루는 채널만 골라 듣는 나에게, 저 문장은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뜨끔했다. 다행히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하지만 타인에게는 비극적인 사건을 유흥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다양한 범죄 사건을 접하면서 경각심을 일깨운다거나 눈뜨고 코 베이지 않기 위해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듣기는 하지만, 과연 난 어떤 마음으로 그런 방송을 보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