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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받으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 박해로
1876년, 석하촌의 ‘장일손’이 천주쟁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는다. 섭주 현령 ‘김광신’은 망나니 ‘석발’에게 형을 집행하게 시킨다. 죽기 직전까지 장일손은 김광신과 석발에게 저주를 내리고, 하늘에서는 붉은색의 비가 내린다. 이후, 석발은 장일손의 머리가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는데…….
1976년, 섭주 외곽 돌아래마을에서 목회를 처음 시작한 ‘김정균’.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친절했고 그 역시 성심성의껏 사람들을 대했지만, 단 한 사람 무당의 딸인 ‘묘화’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사건 때문에 의식적으로 묘화를 피하고 있었다. 실종된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사는 묘화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의 방해와 놀림으로 주변만 서성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묘화가 예수를 영접하여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무당이 될 팔자를 타고 났던 목사와 예수를 영접하여 성령의 은혜를 입은 무당의 딸, 이 조합은 진짜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무속신앙과 기독교는 각각 고유의 원시 종교와 유입된 외래 종교, 또한 다신교와 일신교라는, 섞이려야 섞일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두 종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이 대립 아닌 대립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기독교와 무속신앙의 대립처럼 보였지만, 묘화가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하며 기적을 보이면서는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대립처럼 여겨졌다. 이건 두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믿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불화로도 이어졌다. 거기다 100여 전에 있었던, 현령과 망나니에게 저주를 내리고 사형당한 한 남자와 그 저주를 피하려다가 죽어버린 한 무당의 원한마저 겹치면서, 마을 전체가 불안과 공포 그리고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중반부까지 심화한 갈등이 후반에 최고조로 달하면서, 이야기는 잔혹해진다. 광신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상황에 몰린 것인지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무리를 지으면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하아, 진짜 그 부분은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장면을 상상하는데 으……. 재빨리 예쁜 그림들을 떠올리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거기다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을과 가문의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은 ‘오호!’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맞아, 그 사람 뒤에 누가 있지 않고서야 그랬을 리 없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그리고 대를 이은 저주라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새삼 깨달았다. 와,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물론 몇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 뭔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그 사람은 단지 스피드웨건 역할을 하기 위해 등장한 거였는지, 왜 그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그토록 쉽게 털어놓았는지, 그 사람은 왜 중간에 확인 전화 한 번 해볼 생각을 안 했는지 등등. 거기다 결말에 다다라서는 ‘잉?’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작가가 생각한 제일 나은 마무리였을 것이지만, 내가 바란 방향은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 하긴 언제나 얘기하는 거지만, 정의는 승리해야 하니까…….
어쩐지 여운을 주는 마무리여서, 이어지는 이야기나 앞선 이야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남겼다. 지금의 마무리도 괜찮지만, 위에 언급한 다른 이야기가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어쩐지 그런 거 다 부질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착하게 살아봤자 조상님이 저주받을 짓을 하면 말짱 꽝이잖아! 이건 마치 난 매일 신중하게 안전 운전을 했지만, 주위에서 음주 내지는 졸음 운전한 사람 때문에 사고당하는 거랑 비슷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