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빌 콘돈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Beauty and the Beast, 2017

  원작 - 마담 빌뇌브의 ‘La Belle et la bete, 1740’

  감독 - 빌 콘돈

  출연 - 엠마 왓슨, 댄 스티븐스, 루크 에반스, 조시 게드





  이미 삼십 년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엄청난 히트를 제작한 작품이다. 게다가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제작한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2014’는 동화를 바탕으로 했고, 이 작품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했다. 그러면 소설 원작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원작으로 해야 하나? 



  아버지 ‘모리스’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벨’.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 따분하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구애하는 ‘개스톤’이 지겹기만 하다. 그가 그녀에게 들이대는 것은, 단지 그녀가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벨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취미와 사고방식을 가진 개스톤이 싫기만 하다. 사고로 우연히 야수의 성에 들어가게 된 모리스는 야수의 심기를 거슬려 갇히게 된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 벨은, 대신 자기가 성에 남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성에 있는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야수와 벨은 점점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벨을 차지하려는 개스톤은 사람들을 선동해 야수의 성으로 쳐들어오는데…….



  벨은 애니메이션에서보다 더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등장했다. 아버지 대신 자신이 남겠다며 야수에게 딜을 청하기도 하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야수에게 겁먹지 않고 똑 부러지게 할 말을 다하기도 한다. 처음에 말을 하는 성의 물건들을 보고 공격도 하고, 야반도주도 감행한다. 야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도 주고 말이다. 역시 미녀, 아니 미남은 용기 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법이다.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라, 성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아름다움만 탐닉하던 오만한 왕자가 요정의 저주를 받아 야수가 되었고, 그의 부하들은 성의 물건들이 되었다. 장미꽃이 시들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저주가 풀린다.



  그런데 영화 후반에 ‘응? 이건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성의 모두가 저주에 풀렸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환호한다. 오래 전에 헤어진 가족이었다는 것이다. 음?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성의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나이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왕자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에게 잊힐 정도의 시간이라면, 마을 사람들은 다 죽었거나 늙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을과 성의 비슷한 시간대가 아니었나? 뭐지? 설마 마을 사람들까지 요정의 마법에 걸렸던 걸까? 그래서 저주가 풀려서 가족들과 재회할 때까지 죽지 않고 매일매일을 반복해서 살아간 걸까? 그렇지 않으면, 왕자가 저주에 걸린 게 별로 오래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요정에 의해 기억을 봉인당한 게 아닐까? 궁금하다. 도대체 진실은 뭘까?



  영상은 화려했고, 노래와 춤도 멋졌으며, CG도 좋았다. 실사버전이라 혹시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망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 작품은 그런 우려를 쓸데없는 걸로 만들었다. 엔딩 크래딧마저 놓치면 후회할 정도로 멋졌다.



   다만 아쉬운 점을 고르자면, 애니메이션에서나 영화에서, 왕자보다 야수가 더 멋졌다. 하아, 애니메이션에서 저주가 풀린 왕자를 보고 엄청 실망했었는데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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