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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몽상 2 - 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Nightmares and Dreamscapes, 1993
작가 – 스티븐 킹
스티븐 킹, 이하 킹느님의 단편집 ‘악몽과 몽상’ 두 번째 책이다. 지난 1권은 작가가 그동안 써왔던 작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로 가득했다면, 2권은 ‘후훗, 난 이런 장르도 쓸 수 있지.’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장마』는 우연히 한 마을에 들른 젊은 부부가 겪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에게, 오늘만 다른 마을에 가라고 경고한다. 칠 년에 단 하루, 그 마을에는 장맛비가 내린다. 하지만 그건 그냥 평범한 비가 아니었는데…….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는다는 옛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어른들도 무작정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룻밤만 마을을 떠나라고 말하지만 말고, 사실대로 얘기하고 피할 방법을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내 귀염둥이 조랑말』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시간에 관해 조언을 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로 들어주는 일화가 좀 심상치 않다. 과연 어린 손자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죄송합니다, 맞는 번호입니다』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집에 걸린 전화로 들리는 겁에 질린 듯한, 귀에 익은 목소리. ‘케이티’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까 불안해하며, 이리저리 연락하고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가 진실을 알게 되는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는데……. 어쩌면 운명을 지배하는 신이 간혹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회를 준다고 해도,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10시의 사람들』은 오전 10시만 되면, 회사 건물 모퉁이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니코틴의 악영향으로 인한 환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주인공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상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데…….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 They Live, 1988’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크라우치엔드』는 ‘한밤중 런던에서 길 잃은 자를 노리는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짧은 설명이 붙어있다. 말 그대로, ‘러브크래트’의 ‘크툴루 이야기’를 킹느님의 스타일로 다룬 이야기다. 낯선 곳에서는 반드시 지도를 챙기고 상대방의 연락처를 확인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요즘엔 지도가 아니라 지도 앱이겠지만.
『메이플 스트리트의 그 집』은 새아버지와 살게 된 네 남매의 이야기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사한 그 집 벽에서 아이들은 이상한 금속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아이들은 엄청난 음모를 꾸미는데……. 국회의사당의 돔이 열리면서 로봇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를 스티븐 킹도 어디선가 들어본 게 분명하다.
『다섯 번째 4분의 1』에도 ‘레이먼드 챈들러가 『네 개의 서명』을 쓴다면?’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탐정 스타일의 작가가 ‘코난 도일’의 추리물을 쓰면 어떻게 되느냐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무차별적인 총기 난사와 배신, 음모, 그리고 담배 연기가 자욱한 이야기였다.
『의사가 해결한 사건』은 스티븐 킹 스타일의 ‘셜록 홈즈’ 이야기였다. 왓슨이 사건을 해결한 유일한 이야기라고 한다. 폭력적인 자산가가 죽은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재산 분배로 마찰을 빚은 가족, 하지만 그들에게는 알리바이가 있는데……. 아, 코난 도일의 ‘레스트레이드 경감’보다 스티븐 킹의 레스트레이드 말투가 더 마음에 든다. ‘왓슨’도 그렇고 홈즈도 어찌나 시니컬하고 빈정거리는지, 코난 도일이 지하에서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의 홈즈는 그런 말투가 아니라고 화를 낼까 아니면 마음에 든다고 좋아할까?
『클라이드 엄니의 마지막 사건』는 사립탐정 ‘클라이드 엄니’에게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날 아침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클라이드에게 자신이 이 소설을 쓴 작가라고 말하는데……. 스티븐 킹도 책 빙의라든지 차원 이동에 관한 작품을 쓰고 싶었나 보다. 다만 이고깽판물이나 로맨스판타지가 아니라는 게 다를 뿐.
『고개를 숙여』는 유소년 야구 대회에 출전한 한 팀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앞에서 야구 경기가 펼쳐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 불안했다. 작가가 킹느님이잖아! 그냥 그렇게 경기에 이기고 끝났다고 마무리 지을 리가 없다고! 집에 돌아가다가 괴물을 만나거나, 아니면 과열된 분위기에 코치 하나가 흥분해서 미쳐버리는 거 아니야? 아니면 홈런을 쳤는데 하늘에서 뭔가 내려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느라 어쩐지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 결말은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브루클린의 8월』은 ‘고개를 숙여’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아니 시(?)였다. 야구 경기장에 모여든 관중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작가 해설’을 다 읽고 나면, 맨 뒤에 숨어있던 마지막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로 『거지와 다이아몬드』다. 인간은 눈앞의 행운도 못 보고 지나칠 때가 많으니, 언제나 주위를 잘 둘러보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원래 처음 든 생각이 있었는데, 어, 그러니까, 음, 신성모독이라고 욕먹을 거 같아서 패스하겠다.
킹느님의 분위기가 아닌 듯하면서도 킹느님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