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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강상준 외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How to Survive a Horror Movie, 2007
저자 -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웹 장르 소설, 특히 로맨스 판타지물을 즐겨보는 편이다. 전에는 이계진입물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빙의나 회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빙의물 중에는 자기가 재미있게 읽거나 죽기 직전까지 읽던 소설에 빙의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 설정을 알고 잠시 걱정이 되었다. 내가 웹 소설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아하고 더 많이 접하는 건 추리호러스릴러SF판타지 장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장르 작품들은 영화건 소설이건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로맨스 판타지는 글자로는 좋지만, 영화로는 안 본다.
그러니까 만약, 일어날 확률은 번개를 열 번 맞고도 살아난 다음에 연속으로 같은 번호만으로 로또에 오백 번 당첨될 확률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가 빙의된다면, 로맨스 판타지보다는 추리호러스릴러SF판타지작품이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이런, 곤란하다. 거긴 주인공도 죽어 나가는 살벌한 세계인데! 오 마이 갓! 지금까지 봤던 호러스릴러 작품에서 악당들이 벌였던 잔혹하고 끔찍한 범행 현장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연된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서바이벌 핸드북이라니! 공포 영화라니! 저자의 이름을 보니 익숙하다. 바로 소설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Vampire Hunter, 2010’과 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Pride and Prejudice and Zombies, 2009’의 작가였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나 유명인의 일대기를 마구 바꾸어버렸는데, 그게 또 설득력이 있고 재미있는 소설을 쓴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도 괜찮겠지? 아주 조금 기대를 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갑자기 공포 영화 속에 떨어졌을 때,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마음에 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주로 보는 영화는 추리호러스릴러 장르다. 피와 살점이 튀고, 주인공의 생명도 안전하지 않으며 다양한 하위 장르로 나뉜다. 예를 들면, 호러스릴러물도 마구잡이로 죽이는 슬래셔물이나 악마나 악령이 등장하는 종류, 좀비 같은 언데드물,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오는 작품 그리고 차나 집 또는 인형에 귀신이 들린 것으로 나뉜다. 그리고 또 각각의 장르는 또 캐릭터의 특징에 따라 또 나뉘고……. 하아, 복잡하다.
그 때문에 우선 어떤 장르의 영화 속에 들어왔는지 판단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런 작품들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당연하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여기가 전기톱을 휘두르는 놈이나 광대 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똘똘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나오는 곳인지, 아니면 악마의 자식이 자라고 있는 마을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나돌아다니는 곳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현대인지 중세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법이 존재하는 시간대인지 확인도 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살아남을 수 있을지,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때 캠핑장이나 여행을 가면 살인마가 돌아다니는 게 만국 공통의 법칙이니까 ‘그냥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봐라’ 같은 거. 그리고 ‘유령의 집으로 확인되면 그냥 밖으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마라’ 등등. 또한, 인형이 공격해와도 당황하지 말고 체격의 차이를 이용해서 밟아주라는 충고까지 잊지 않는다. 그래, 맞는 말이다. 내 키의 오분의 일도 되지 않는 인형이 칼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오는데 왜 반격도 못 하는지 이상했다. 물론 그 인형이 초능력을 쓴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책은 상당히 유쾌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나름 희망적이었다. 지금까지 추리호러스릴러SF판타지를 즐겨봤던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맞아 그러면 살 수 있지’라든지 ‘나도 그게 이상했어!’ 또는 ‘맞아, 맞아. 그런 애들은 피해야지.’라고 공감할 수 있다.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저자가 공포 영화 말고 공포 소설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룬 책도 내주면 좋겠다. 특히 일본 공포 소설……. 그런데 문득 든 의문. 내가 주로 보는 작품들은 거의 외국 것인데, 거기 떨어지면 빙의자 내지는 차원이동자 버프로 외국어를 저절로 잘 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