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귀야행 12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5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百鬼夜行抄, 1995
작가 - 이마 이치코
『하얀 턱』에서는 ‘리쓰’가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의 친척을 만나러 간다. 갑작스러운 눈보라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큰아버지 집에 도착한 리쓰.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에 관해 알게 되는데…….
리쓰의 아버지는 어머니 집안을 잇는 데릴사위였다. 그런데 그동안 아버지 친척 쪽은 한반도 얘기가 없어서 고아라고 추측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순둥이 같은 이미지의 아버지에게 그런 강단이 있었다니! 설녀 전설이 있는 마을답게 리쓰는 여러 요괴와 혼령을 만난다. 그가 만난 어린 소년의 정체를 아는 순간, 하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지면서 안타깝고 또 감동이었다.
『밤에 우는 나무』는 ‘즈카사’에게 생긴 남자친구에 관련된 이야기다. 즈카사가 남자친구 집 근처로 벚꽃 구경을 간다고 하자, ‘아키라’와 리쓰 그리고 ‘아오아라시’까지 따라나선다. 거기에 ‘오지로’와 ‘오구로’까지! 하지만 이들이 모였으니 제대로 꽃구경이 될 리가 없다.
벚나무에 있는 요괴들 때문에 시공간이 왜곡되어 만들어진 슬픈 이야기였다. 그냥 꽃나무인데 왜 이리도 많은 요괴가 얽혀있는지 모르겠다. 나무 하나에 요괴가 서넛은 있는 듯. 그래서 인간을 함정에 빠트리고 오해하게 만들고 불화를 일으키는 모양이다. 99개의 거짓말에 1개의 진실만 섞어도, 인간은 그게 다 진실이라고 믿으니 말이다.
『물가의 검은 길』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매년 벌어지는 행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을 청년 두 사람이 풍작신에게 풍년을 비는 행사인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흉년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행사에 참여했던 두 사람의 집에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 할아버지의 꿈을 꾸고 불길한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리쓰는 매사에 조심하고 사람들과 얽히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도 모르는 사이에 행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초월적 존재의 의지로 운명이 정해진다는 건 별로다. 난 치킨을 먹고 싶은데 그 존재는 넌 오늘 피자를 먹을 운명이라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날까? 저녁 메뉴 하나만 예를 들어도 기분이 안 좋은데, 평생 내 삶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마을의 행복을 위해 두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좀 별로고. 그러면 두 사람에게 평소에 잘 해주던가!
『거미줄』은 주술에 걸린 한 여인의 이야기다. 어느 날 집에서 발견된 끝을 알 수 없는 구멍과 그 안으로 이어진 전화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배선기술자를 불렀는데, 뭔가 이상하다.
석가와 거미줄이라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원한을 품고 악령이 된 사람에게서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였다. 그나저나 여우는 무슨 죄로……. 자신의 악운을 동물에게 전가하려는 인간의 뻔뻔스러움과 자식 사랑이 모순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산할미』는 어느 날 리쓰네 집에 나타난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어머니의 실종 후, 소년이 자기 집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가문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편 리쓰는 아오아라시의 심술 때문에 겨우 완성해가던 레포트를 날리고, 요괴를 막아야 할 처지에 놓이는데…….
요괴가 기르던 아이를 데려와 인간의 아이로 길렀다는 옛날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 같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현대는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져서, 요괴의 아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야생동물이 기르던 인간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요괴가 길렀다는 아이 이야기는, 야생동물이 기른 아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불행했던 삶을 생각하면, 이번 에피소드의 결말이 왜 그렇게 마무리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리쓰의 새로운 친척이 등장하고, 리쓰 부모의 결혼에 얽힌 뒷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즈카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놀랐던 12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