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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 EXIT, 2019
감독 - 이상근
출연 - 조정석, 윤아, 고두심, 박인환
취업준비생인 ‘용남’은 대학 시절 같은 산악동아리였던 ‘의주’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의주가 일하는 연회장으로 예약하고, 우연을 가장해 그녀와 마주친다. 사실 그는 취업하고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한편, 자신을 해고한 화학 회사에 앙심을 품은 연구원이 도심에 가스를 퍼트린다.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린 용남의 가족과 의주는 가스를 피해 건물 옥상으로 대피한다. 갖은 노력 끝에 구조 헬기가 도착하지만, 정원이 초과하여 다 구조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용남과 의주가 남는데 가스가 점점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둘은 예전 산악동아리 시절을 떠올리며,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데…….
별로 기대 없이 본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실망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공포 장르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아이돌 출신이지만 연기 경력이 오래되었으니까 혹시 하는 마음에 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화는 훨씬 더 괜찮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외국 재난 영화는 근육질 몸매에 무술도 잘하고 사격 실력까지 갖춘, 재난이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해서 별로 긴장되거나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평범한 인물들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고 있어서 보는 내내 긴장에 또 긴장되었다. 물론 주인공이라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벽을 타고 오르거나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너갈 때는 손에 땀을 쥘 정도였다.
한국 영화니까 당연히 신파 장면이 들어가긴 했는데, 그게 또 어색하지 않았다. 딸 하나는 가스에 당해 의식을 잃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뒤에 남겨졌으니, 쓰러지지 않을 어머니 없고 제발 도와달라고 애걸하지 않는 아버지 없을 것이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박인환 씨의 연기는 진짜……. ‘에이 또 신파네’라는 생각보다 갑자기 울컥하면서 나라도 저러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고객을 먼저 보내야 한다고 괜찮다고 웃었지만, 헬기가 떠난 이후 울음을 터트리는 의주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울상을 짓고 말았다. 특히 그들을 구하러 온 헬기를 보고 환호하다가, 맞은편 건물의 학원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갈등하는 장면에서는 ‘어떡해’를 연발했다. 왜 학원은 옥상 문을 잠가놔서 애들을 대피도 못 하게 한 거야! 옥상에 가 있어야 구조 요청을 보내고, 그래야 헬기가 애들을 발견하지!
영화는 위급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잘 보여주었다. 벽을 타는 건 불가능하지만, 뭘 챙기면 좋을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힌트를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현실 풍자와 비판도 깨알같이 숨겨두었다. 두 사람이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동안, 방송국에서는 드론으로 그들의 모습을 찍어 생방송으로 내보낸다.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군가의 눈요기나 돈벌이가 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리고 용남의 선배가 술자리에서 말한 ‘우리의 삶 자체가 재난’이라는 말이 잊히질 않는다. 공부, 진학, 취업, 결혼, 육아, 승진, 집 구하기 등등의 시련으로 가득한 삶인데, 요즘은 질병까지 난리다. 진짜 삶 자체가 재난의 연속이다. 그래도 용남과 의주처럼 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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