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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4 -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제 -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
작가 – 김재희
‘이상’과 ‘구보’의 사건 기록지 네 번째 이야기다. 물론 사건의 해결은 이상이 하고, 구보는 같이 다니면서 조수 역할을 한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이상을 대신해, 거의 모든 사건에서 구보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여덟 개의 사건이 수록되어있다.
『주인 없는 양복』은 한 양복에 얽힌 이야기다. 유명 영화감독이 죽기 전에 맞춘 건데, 죽은 사람의 옷이라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구보는 저렴하게 팔기에 샀는데, 이후 악몽에 시달린다. 이상과 구보는 영화감독의 죽음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갑자기 토요미스터리 풍이라 조금 놀라웠던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 작품이다.
『군산의 보물창고』는 커다란 창고에 조선의 여러 보물을 소유하고 있던 의뢰인은, 밀실 상태에서 사라진 병풍을 찾아달라 부탁한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면서, 두 사람은 이 집에 얽힌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되는데…….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는 말도. 언제나 희생되는 건 약자라는 사실에 더없이 침울해지는 이야기였다.
『고래의 꿈』은 우편국의 화장실에 이상과 구보 두 사람을 향한, 살려달라고 적힌 낙서로 시작한다. 낙서에 적힌 곳을 찾아간 두 사람은, 그걸 적었다 추정되는 사람이 오래전에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좇던 둘 앞에 이상한 조직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번 사건은 진짜 화가 났다. 세상에는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부르기 싫은 것들이 존재한다. 아,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도구로 보는 것들은 진짜 싹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백운산장의 괴담』은 등산길에 만난 사람들이 각자 겪었던 기이한 일을 얘기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는데…. 짧지만, 은근히 재미있었다. 등산이라니, 이상은 내 취향이 아닌 거로.
『조선미인보감 살인사건』은 연쇄 기생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생이지만 경성방송국의 전속 가수로 활약하는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이어 죽은 채로 발견되고 있었다. 이상과 구보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 용의자들을 조사하는데……. ‘고래의 꿈’과 더불어 읽으면서 화가 났던 이야기다. 인권이란 뭔지 생각할 계기를 주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카프 작가의 실종』은 일본 정치인 암살이라는 누명을 쓴 작가의 실종에 얽힌 이야기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차이나타운의 유명 청요릿집 주위를 수소문하던 이상과 구보. 그러던 중, 그들은 묘한 이야기를 듣는데……. 내 새끼가 소중하면, 남의 새끼도 소중한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생각하지 못한다.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는 사교 클럽에서 일어난 질식사건을 다루고 있다. 명문가 부인과 신흥 부잣집 부인을 중심으로, 클럽은 두 계파로 나뉘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부인이 클럽에서 내온 떡을 먹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클럽 주인은 이상과 구보에게 그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사건의 진상은 의의로 간단한데, 뒤에 얽힌 이야기는 복잡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뒷맛이 씁쓸했다.
『극장 주임변사의 죽음』는 유명 변사가 극장 단성사에서 목을 매 죽은 채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이상과 구보는 그가 예전에 마약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런데 연이어 또 다른 극장 관계자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마약은 좋지 않다. 내 몸에도, 내 대인 관계에도, 그리고 내 염치와 자존심에도.
두 사람이 다루는 사건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의 모든 범죄의 원인은 ‘사랑’과 ‘돈’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고 들어가면 사랑과 돈에 해당한다고 우길 수도 있지만, 어떤 사건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증오의 표출일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사건은 단지 피해자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런 요인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혼란한 시대상, 그러니까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일본의 착취는 심화하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지던, 그런 상황과 맞물리면서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과학과 미신, 그리고 관습이 뒤섞이고, 친일파와 독립군 그리고 방관자들이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동시에 모든 것을 포기한 허무주의까지 떠도는, 그런 묘한 분위기 말이다. 어쩌면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2권과 3권에서 큰 줄기를 이루었던 ‘백색교’가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비밀 결사가 하나 등장하는데, 상당히 의심스럽다. 앞으로 두 사람을 꽤 괴롭힐 것 같다.